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2009년에 그리스에서 만들어졌으니 홍보 문구 대로 독재정권을 비유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의 표현이 그것에만 집중되어있지 않고 확장성도 염두해두었으며 노골적이지만 건조하고 딱딱한 성적인 표현이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요즘에는 별로 나오지 않지만 언제나 영화의 주요한 소재 중에 하나는 '탈출' 이야기였다. 억울한 누명을 썼던, 또는 그런 것에 관하여 확실치 않은 주인공은 어떤 철옹성 같은 감옥을 사력을 다해 탈출하는데 성공하는 내용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다. 왜 감옥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을까?


우선, 겉으로 보여지는 이유, 감옥이라는 곳이 예전에는 정말 나쁜놈들만 수감되는 곳이 아니라 옳은 말을 하고도, 권력의 강권이나 제도의 허점에 의한 어떤 누명이 씌여서 들어가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들에 대한 위로이며 그들을 가둔 정권, 권력, 사회, 문화에 대한 흥미진진한 반항의지표현일 것이다.


더불어,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것은 서구문화권에서 중요시하는 예술 작품의 덕목이기도 하다. 그들이 예술작품에 상패를 줄 때 이 잣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것은 '기존 체계의 벽, 울타리, 숲을 뛰어넘는 것'이다.


국내 뿐만 아니라, 유교적인 세계관이 깊게 배어있는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에서는 큰 대접을 못 받지만 유독 유럽 영화제에서 명감독 대접을 받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영화의 기술적 측면은 별로지만 (땟깔이 별로지만) 이야기, 캐릭터, 메시지는 기존 체계의 벽 위에서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것 같다. 게다가 김기덕 감독은 서구인에게 피와 살과 같은 기독교적 소재를 전략적으로 영리하게 사용한다.


서구권의 가치관과 유교권의 가치관의 우세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각각은 큰 의미에서 그저 의식주의 역사문화와 깊게 관련되어 있을 뿐,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서구인들의 조상은 유목을 하며 새로운 땅을 정복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숲, 새로운 땅에 대한 욕망이 의식주 문화 속에 깊게 배어있을 것이다. 즉, 새로운 땅을 탐험하는 것에 미덕을 부여해왔으며(이것은 세계사적으로 대항해시대, 신대륙 정복, 식민지 제국주의 등을 나았다. 이것도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이런 관습은 예술에도 적용되었다는 뜻이다. 반면에 동양의 조상들은 농사 위주로 신토불이 세계관으로써 거의 제자리에서 살아갔다.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더불어 잘 살아가느냐에 미덕을 부여했고 (이것은 울타리 안에서의 조화로운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교주의는 그것을 잘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아버지 인물은 아내, 두 딸, 아들을 외부세계(현대사회)와 완전히 격리시켜 살아가도록 만들었고 거의 교주처럼 군림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국내의 어떤 사이비 교주처럼 반인륜적이고 괴상한 행세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들을 외부 세계의 어두운 측면으로부터 차단하여 보호한다는 강한 신념을 지닌 다소 권위주의적이긴 하지만, 나름 열심히 노력하며 검소하게 살아가고 있는 밖에서 볼 때는 평범한 중소기업 사장 정도이다. 어떤 면에서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수도원을 비유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버지는 아들의 성욕을 자신의 공장에서 경비로 일하는 여직원을 통해서 해결해준다.


세 남매는 일반적인 단어조차 의미가 다르게 교육받으며 성장했다. 이것은 북한 주민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 감독이 굳이 북한을 이렇게 숨겨가며 표현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가정 축소판으로 생각하면 납득이 될 것 같다.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아버지의 저택, 수영장까지 있을 정도로 유복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집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고 엄격하게 교육받고 자랐기 때문에 아이들은 대문 밖으로 던져진 비행기 장난감조차 스스로 주워오지 못 한다. 아버지(어머니도 공모)에 의해 주입된 인식의 감옥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굳이 독재정권에 대한 비유라고 한정하지 않고 본다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는 '타인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낸 인식의 벽을 뛰어넘어 자유의지로서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문학, 예술, 과학일 수도 있고, 그냥 보통 사람 입장에서 스스로 선택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도 표현하고 있듯이 보통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벽을 뛰어넘는 자는 그만한 고통의 댓가를 치른다. 이것은 수많은 영웅신화의 모티프이기도 하다. 그 고통을 인내하고 감내하면서까지 험난한 벽을 뛰어넘었기에 영웅으로 칭송될 이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고통도 없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굳이 영웅이라고 칭송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큰 딸은 남동생을 정기적으로 만나러 오는 여경비와 협상하여 얻어낸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일종의 각성을 하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초권위적인 아버지가 주입한 인식의 벽을 깨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고통을 격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이성이 포기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무의식이 포기하지 않는 것 같다. 단순히 '권투 관련 영화' 비디오일 뿐인데 큰 딸에게는 엄청난 깨달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거의 20살이 되도록 TV 프로를 한번도 본 적 없고 단지 어쩌다가 아버지의 배려로 가족 피크닉 동영상을 보는 것이 유일했고 집밖으로 한번도 나간 적이 없는 여자가 '권투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아버지의 저택은 인식의 벽으로서 독재정권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수없이 다양한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관객 각자의 몫이다. 그 벽을 인지하는 것 자체도 영웅의 몫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반드시 어떤 벽을 깨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짧은 삶, 개인의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뭘 그렇게 발악하면서 '무엇을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며 벽을 깨거나 울타리를 넘어야 하는가? 벽을 깨는 영웅은 본래 희소하다. 그 자의 운명이지 어떤 사람이 이성적으로 학습해서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생각도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삶의 행복을 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영웅이 아닌) 사람도 한 인간으로서 소중한 생명체이고 인격체이다. 모든 사람에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밭 길을 걸어가라고(이것은 혁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벽이며 울타리로 볼 수 있다) 종용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는 자신의 의지이든, 운명의 의지이든 벽을 깨고 말고도 개인의 선택에 포함된다. 울타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이것은 어디까지나 이 영화에서처럼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초권위적인 감옥과 같은 울타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이때는 탈출하는 것이 옳다),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된 저택이라면... 라는 전제하에서의 여담이다)



2012년 7월 30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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