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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신조어

신조 관용구: 글씨체가 곧글스럽네요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2. 25. 18:20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자판이나 터치스크린으로 글자를 자주 쓰기때문에 특별히 손글씨를 발휘할 일이 많지 않다. 물론 직종에 따라 간단히 체크 표시를 하거나 짧은 글자를 쓰는 일은 종종 있겠지만 말이다. 희귀동물이 사라지듯이 손글씨라는 용어도 희귀해지고 있는 시대인 것 같다.

대세가 스마트 모바일 기기라고 하더라도, 이미 일상속에 깊이 파고들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전통적인 것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종이 노트에 글을 적거나 아이디어를 끄적이며 그림을 그리는 일은 컴퓨터 기기로 하기에는 번거롭거니와 인간적인 맛이 매우 떨어진다. 게다가 어떤 실수로 컴퓨터에 저장했던 수많은 세월의 흔적이 한순간에 날라갔던 '지구에 혜성이 충돌한 것'과 비슷한 충격을 경험한 사람은 컴퓨터 데이터에 대한 차갑고 회의적인 이질감을 품고 있을 것이다.

물론 종이 노트에 무언가를 적는 것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자를 먹다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끄적였는데 마침 설탕물이 많이 발라져 출고된 '왕소라'를 먹고 있었던터라 손끝에 뭍은 설탕끼가 노트 지면에 뭍어서 살짝 끈적거리게 되는 경우에 컴퓨터처럼 바로 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고 다른 새 종이 노트에 그많은 내용을 죄다 옮겨적을 수도 없다. (이 경우 컴퓨터 기기에서는 쉽게 복사해서 붙여넣기할 수 있어 편리하다) 또한 어떤 내용을 어느 페이지에 적었는지 기억하려 시도하며 주마간산으로 넘겨보는 일도 많다. 즉, 종이 노트에서는 검색(search)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행동 속에 어떤 플러스적인 요소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나치고 있던 것을 다시 돌아보게 될 우연성의 만남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장단점이 있다. (이렇게 쓰니까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한 글이 되어 버렸다. --;)


컴퓨터는 최신 기기가 아주 사랑스럽다. 그러나 손때와 먼지가 쌓이고 기업들의 상술에 의해 불과 몇달만에 꼬진 기계덩어리로 전락하면 그 애정은 앞으로 구입할 최신 기기로 급히 선회한다.

그러나 종이 노트 또는 종이책은 그렇지 않다. 손때가 많이 뭍고 모서리가 헐거워지고 벗겨진 종이 노트나 책을 바라보면 내가 그만큼 사랑을 주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책꽂이게 꽂아있는 새책이나 빳빳한 커버의 새 노트는 아직은 나와 관계를 가지려고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손때가 많이 뭍은 종이 노트와 책은 나와 깊은 관계가 된 사이임을 확인해주므로 남다른 애정이 샘솟는다. 아무리 낡고 헐거워졌어도 그 속에 적힌 수많은 나의 생각들이 적힌 글자를 생각하면 마치 나의 분신 같은 느낌 마저 든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실제 대상과 촉감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더욱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즉, 컴퓨터 디지털 가상 세계, 텔레비젼, 영화 속의 무엇은 비록 나의 감수성과 지식을 풍부하게하고 행복하게 해주지만, 나와 직접 촉감으로 교감할 수 없기 때문에 마치 엔진이 장착되지 않은 근사한 고급 자동차에 타고 있는 것 같다.

연인 사이에 촉감은 매우 중요하다. 비록 어떤 이유로 매일밤 촉감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대체물이 그 사랑을 대신하여 사랑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종이에 쓴 편지일 것이다. 연인에게 쓴 종이 편지는 단지 글자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 글자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글자를 적는 자신의 촉감을 상대에게 보내는 것이다. 상대는 그 편지를 단지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읽는 것이 아니라 연인의 촉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쨌튼, 누구나 종이에 편지를 쓰면 손글씨가 대번에 들어난다. 편지 한 장으로 그 사람의 손글씨가 어떤지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손글씨는 어떤 면에서 엄지 손가락의 지문과 같은 종족이다. 손글씨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냥 그 사람 자체의 이면을 표현하는 것이라 소중하다. 누구나에게 손글씨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소중하다.

그래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손글씨가 좋고 나쁜 경우는 분명히 있다. 누군가의 손글씨가 나쁘다고 해서 "글씨 디게 못 쓴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경우는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에티켓이 아닐 것이다. 이럴 때는 이렇게 말하면 센스 있는 말이 된다.

"우와! 글씨체가 곧글스럽네요."

실제 곧글로 써진 글자를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한글, 알파벳, 한자...를 보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따지면 다소 차이가 있지만 노골적이지 않게 완곡히 표현하는 말이다. 참고로 이렇게 말해도 전달되는 의미는 동일하다

"우와! 글씨체가 톨글스럽네요."

평소 손글씨를 쓰고 있는 지인 옆에서 대뜸 "개발새발처럼 쓰지 말고 잘좀 써봐."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던 것을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면서 완곡한 표현으로 이렇게 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곧글스럽게 쓰지 말고 잘좀 써봐"

단순히 글씨체가 나빠보여서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글씨체가 4차원적이면서 알듯 모를 듯 매력적인 요소도 있는 것 같을 때 이 관용구를 쓰면 더욱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된다.


종이에 적는 손글씨, 종이에 그린 그림들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것들은 나의 마음이면서 동시에 촉감의 분신이다. 비록 나의 손글씨도 매우 곧글스럽지만(그래도 글자를 알아보기에는 어렵지 않다는 것으로 위로한다),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이다.


2011년 2월 25일 김곧글


ps: 연인사이에 촉감은 하나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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