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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좋았다고 내게도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미루다 오늘 봤다. 소문보다 괜찮았다. 그리 깊지는 않다. 인적이 드문 산행에 떨궈졌다. 웬 여인이 떠준 약수물, 솔잎 안 건지고, 마실 때 느낌이다. 주변엔 사람 그림자 없고, 간간히 들짐승, 날짐승 울음, 울창한 숲 꿰뚫고 쾌속 가로지른다. 그 원시음은 개울소리, 바람소리와 뭉쳐져서 통키타 리듬과 보컬로 변한다. 명확한 영국 영어 밝음과 심플한 단문의 브리티쉬 모던 포크, very good. 깨어나니 해가 중천이다. 때로는 꿈 속이 더 좋다. 때로는 현실보다 영화속에서 살고 싶다.

먼 옛날, 영화와 그리 상관 없던 시절, 여러 사람 만나는 말단직업에 종사했을 때 고객과 점심하며 화재거리로 "Before Sunrise 재밌죠?" 라고 물었다. 젊은 여자 고객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아니요." 대답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고 얼굴에도 써있었다. 그때 이후 생각 하나가 응고됐다. '모든 여자들이 감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구나' 그렇담 '원스'도 내가 느꼈던 것과는 꽤 달리 "대체 뭐가 재밌다는거야?" 라고 평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남자가 좀 많고 여자가 좀 적을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영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순수한 사람이 이 영화를 보면 약보다는 독이 될 수도 있을 정도로 맑고 순수한 영화 같다. 마치 액션을 좋아하는 남자가 브루스 윌리스 혼자 맨발로 수많은 테러리스트와 싸워이기는 영화를 보고 '나도 나혼자 때거지 조폭들의 코를 납짝하게 해주고 수많은 선량한 시민을 구하리라. 다 덤벼!' 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원스'가 좋았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무인도 떨어지기 전에 DVD 가져갈 수 있다면 '원스'보다 '오다기리 조의 도쿄타워'를 선택하겠다. 좀더 깊고 현실적이고 성찰적이고 무엇보다 거짓말을 덜 하는 영화다. 반대로 '원스'를 선택한 어떤이도 어쩌면 세월이 꽤 흘러 두 영화를 다시 보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다.

1년 전, 동갑 친구가 좋아하는 연상의 여자, 뮤지컬 연출자와 셋이서 부대찌개 먹을 기회가 있었다. 한 눈에 기가 쌔보였다. 그 친구와는 친한 누나 동생 사이라고 했다. 내가 동석한 이유는 시나리오 작업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영화 얘기 하다가 '라디오스타' 영화 얘기 나왔는데 그 연출자는 '도대체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미 없었다니...' 순간 멍했는데, 몇 분 정도 후에 이해가 갔다. 라디오스타는 두 명의 남자끼리 잔잔한 우정을 다뤘으니까 어떤 여자는 재미 없을 수도 있겠구나. 인간은 자신의 입장에서 대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이성'씨는 덜 그래도 '감성'씨는 많이 그런 것 같다.

아름답고 순수하고 풋풋한 '원스'가 세상사에 혼탁해진 내 감수성 영역을 띵! 하고 깨운다. "What a wonderful 청춘!" 그렇다고 너무 빠져들 것 까진 없다. 현 세상이 '원스'처럼 아름답지 않다고 소주 건배하자는 청승 의미가 아니다. 현 세상이 어떻든지간에 자신만이라도 '원스'처럼 살아볼까나 객기를 똥고집 부려보는 것도 불꽃처럼 아름답지만 반대 물결 유혹도 만만치 않으니까 단단한 마음 각오도 필수란 의미다.

꿈꾸는 듯한 영화가 좋다. 현실보다 기분 좋은 꿈. 영화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진 말자. '원스' 정도면 로맨스 영화로 근사하다. 아련하다. 깊지는 않다. 삶을 너무 깊게 안 보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원스'는 정신 건강에 좋다. 감수성 영역을 청정구역 만들어준다.

2008년 9월 27일 김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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