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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감상글] 드라이브 마이 카 (Drive My Car, 2021)

by 김곧글 Kim Godgul 2022. 3. 20. 20:41

 

 

90년대초에 국내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장기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던 일본소설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노르웨이 숲’이었다. 당시에 국내 출반 제목은 ‘상실의 시대’였다. 누가 지었는지 매우 잘 지은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들은 어느 시대에 어느 지역에서 읽더라도 짜릿하다고 볼 수 없는 밋밋하지만 두꺼운 분량의 이야기이다. 다만 그 속에 일관되게 일맥상통하는 굵직한 감정이 있다. ‘보편적인 인간의 상실감을 치유’가 그것이다.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에 일관되게 흐르는 강줄기도 ‘상실과 치유’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하루키의 장편소설은 거의 다 읽어봤지만 단편, 중편을 모두 섭렵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안 읽어본 것 같다. 비록 원작과 영화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영화가 하루키의 소설을 바탕으로 잘 만든 것 같다. 마치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느낌 마저 들었다. 다소 지루한 듯한 이야기지만, 정형화되거나 전형적이지 않게 전개되기 때문에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신선한 나른함이다. 어느 순간 끝에 도달해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를 형식적인 관점으로 간단하게 말하면, 고상함, 절제미, 간결함, 연극적, 비전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느낌의 영화에 갈증을 느낄만한 최근의 전반적인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현주소에 막 따끈따끈하게 출시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추켜세울 수 있다.
 

굳이 이 영화가 왜 한국 관객에서 강하게 어필하지 못했는지를 꼽아본다면,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런 유의 ‘순수 예술 영화’에 의례 한국 관객이 기대하는(열광하는) 요소가 매우 미약했거나 부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간의, 형제자매 간의, 죽마고우 같은 친구 또는 동료 또는 선후배 또는 사제 간의 진한 정(감정) 같은 것이 이 영화에는 없다.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순수 예술 장르 (외국 작품 포함) 영화를 꼽아서 살펴보면 주로 이런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대도시에 거주하며, 편의점, 서양식 카페, 위스키바, 레스토랑을 애용하고, 홀로 살거나 자녀에 대한 욕심 없이 부부만 사는 경우도 많고, 홀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고, 굳이 타인과의 갈등이 발생할 것 같으면 미리미리 회피하고, 자신만의 소소한 취미를 즐기며 살아가는 매우 평범한 대도시 현대인인 경우가 많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어느 정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도 자극적이지 않다. 걸쭉하거나 맵거나 짜거나 달달한 음식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은 한국 관객들에게 (비록 두터운 독자층이 있지만 영화는 별개의 매체이므로) 책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하는 것 같다.
 

아무튼 각설하고, 필자는 이 영화를 매우 좋은 느낌으로 감상했다. 영상미도 매우 훌륭하다. 영화적인 순수한 영상미를 탐닉하는 관객이라면 매우 만족스러울 것이다. 문뜩 ‘이런 장면 새롭고 멋지다’, ‘이런 각도에서 이런 장면까지 찍다니 매력적인데’. 과감한 생략, 점프, 절제미, 현실적이지 않고(실제스럽지 않고) 연극적인 측면도 있지만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진행에서 기존의 보편적인 클리세를 탈피하는 (그러나 결코 자극적이지 않게) 전개도 좋았다. 무엇보다 영화 전문가들이 좋아할(매료될) 요소들을 많이 갖추고 있다. 이 영화가 여러 유수 영화제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겠다. 만약 그 이유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관객이라면 순수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의 관객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장르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상업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의 관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22년 3월 20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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