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만든 이미지

 

 

(2007년 8월 28일에 적었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재업)

 

 

 

디워 LA 촬영 일정은 직장 나가는 것과 비슷했다. 5일 일하고 이틀 쉬고. 그러나 얼마 후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모른다. 추수감사절로 5일 가량 쉬었는데 그 전인지 그 후인지 관련 문서를 몽땅 LA에 놓고 왔기 때문에 모른다. LA 시가지 촬영일 말이다.

 


삼사일 연속 촬영이 끝나고 이틀인가 쉰다고 들었다. 나야 월급 타는 것도 아니고 일당 얼마였으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차라리 피곤해도 촬영장에 나오는 것이 좋았다. 새롭고 유익한 경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 LA 시내 한복판에서 촬영하니까 메이킹 잘 찍어라.”

 


지루한 촬영 준비 시간, 편히 앉아 쉴 수 없는 입장의 필자에게 심감독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LA 시내 후미진 작은 골목을 막고 찍겠거니 예상했다... 심감독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누가 들어도 거의 필자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까지 한국 영화감독이 미국에 날라와서 LA 시내 한복판에서 거대하게 군중씬과 전투씬을 찍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한국 영화 역사에 통달하지 못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렇다.

 


본격적인 LA 시가지 촬영 전날 쉬는 날이었지만 필자에게 할 일이 생겼다. 이무기가 올라간 건물에서 그리 멀지 않고, 사무실에서도 멀지 않은 시가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스파이더 캠’을 설치하고 촬영하는 한국 스탭과 미국 스탭의 작업을 메이킹에 담는 일이었다.

 


‘스파이더 캠’은 실제로 영화 ‘스파이더맨’ 촬영에 참여했던 기술자가 설치한다고 들었다. 한쪽 건물의 옥상에서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 건물의 옥상까지 굵은 철사 같은 로프로 연결하고 그 위로 카메라를 이동시켜 촬영하는 작업이었다. 당연히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을 것이다. 부득이하게 무게가 나갔기 때문이다. CG를 담당하는 한국 스탭은 통역직원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며 현지 스탭(기술자)가 스파이더캠을 설치하는 것을 지켜봤다. 필자는 그런 장면들을 메이킹 카메라에 담았다. 재미는 없었다. 남자 다섯 여섯 명이서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강철줄을 만지작거리는 것에 재미가 있을 리 없었다.

 


영화 속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공중전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었겠지만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재미와는 한참 멀었다. 필자가 직접 작업에 참여했다면 집중도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것도 아니고 말이다. ‘스파이더 캠’은 한국 영화 역사에 기록되어도 괜찮을 아이템일지도 모른다. 한국인 기술자가 설치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자본에 의해 고용된 기술자가 설치했으니 우리 것에 포함시켜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다른 직원들은 점심을 먹고 왔는지 식사 얘기가 없다. 아침도 안 먹었는데 말이다. 디워 촬영을 하면서 아침을 챙겨먹어 버릇했더니 그새 습관이 되었다. 도너츠와 블랙커피... 어쩌면 때마침 혈당에 민감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있다. 영화 ‘패닉 룸(Panic Room, 2002)’에서 ‘조디 포스터’의 딸처럼 심각한 것은 아니라도 말이다.

 


걸어서 5분. 근처에 지하 아케이드가 있었다. 정말 사람이 없다. 원래 그렇다.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초거대 도시라는 닉네임과는 어울리지 않게 나른하고 따분한 아케이드였다. 종로 아케이드의 100분의 1 밀집도였다.

 


‘이건 왠 브루터스냐?’

 


꼭 그럴려고 그랬던 것은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됐다. 덩치 있고 가슴에 털이 많을 것 같은 주인이 투박하게 만들었다. 의외로 시간이 좀 걸렸다. 햄버거이다. 거기까지 가서 맥도널드를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터키식 어쩌구 저쩌구... 즉 수제 햄버거였다. 결과는...

 


기똥찼다. 그다지 그대하지 않아선지는 몰라도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햄버거는 처음 먹어봤다. 수제 햄버거의 재발견이었다. 햄버거도 이렇게 맛있게 요리할 수 있구나! 참고로 베이컨이 들어있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인스턴트 식품, 비만의 원인, 미국 문화의 앞잡이, 햄버거에 대한 악담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필자의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자주 사먹었을텐데...

 


그날 스파이더 캠을 설치했고, 하루 이틀에 걸쳐 CG 스탭들은 몇 번을 더 작업했지만, 필자는 LA 시가지 촬영장에 합류했기 때문에 더 이상 보지는 못 했다. LA 시가지 촬영 군중씬으로 이런 저런 볼거리로 (넓은 의미에서) 흥미로운 재미가 풍부한데, 디워의 어떤 직원이 스파이더 캠을 촬영하는 곳에 가서 메이킹을 찍으라고 했다. ‘충분히 찍었고 찍을 수 있는 작업 장면이 많지도 않은데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필자는 가는 둥 마는 둥 하며 그 직원의 시선을 피했다. 어치피 그 직원은 심감독을 보좌하고 통역까지 하느라 엄청나게 바빴다. 보잘 것 없는 메이킹 나부랭이한테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필자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LA 시가지만을 메이킹에 담는데 주력했다. 스파이더 캠을 찍는 곳에 갔더라면 흥미진진한 많은 장면을 놓쳤을 것이다. 어쩌면 탱크 전차병이 기관총을 단사하는 장면을 못 봤을 것이다.

 


스파이더 캠 촬영은 잘 되었다고 들었다. 심감독도 며칠 후에 촬영본을 보고 흡족해했다. 2분 정도 밖에 안 되는 동영상을 서너 번 촬영한 것이다. 그 중에 하나를 골라서 CG팀에서 자신들의 애물단지 작품 용가리의 후손들과 합성한 것이다. 스파이더 캠용 카메라에 장착할 수 있는 필름 길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 길게 찍지는 못했다. 영화에서는 짧은 순간이겠지만, 교묘하게 반복해서 사용하는 구간도 있겠지만, 촬영하는 작업은 정교하고 힘들고 고된 노동이었다. 그러나 영화 작업의 온갖 고단한 고생은 마침내 개봉이 되었을 때 흥행이 되는 순간 일순간에 환희로 바뀐다. 보람과 성취감이 매우 크다. 그런 특별한 열매의 단맛을 본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쉽싸리 영화계를 떠나지 못한다. 좋은 얘기야 나쁜 얘기야......

 


계속...

 


2007년 8월 28일 (초안)
2021년 8월 22일 (약간 수정)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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