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18일에 적었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재업)

 

 

 

심심할 때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아직 한국만큼 미국문화에 익숙치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울만큼 LA가 익숙치 않아서다. 영어를 한국어만큼 잘 하지 않으면 가볼 곳에 대한 선택권이 좁아진다. 유럽, 일본의 도쿄, 미국의 뉴욕을 배낭을 메고 여행하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걸어서 갈만한 곳이 LA에는 정말 없다. 버스, 지하철 노선이 있지만 매우 제한적인 지역을 커버할 뿐이다. 그래서 재미가 없는 편이다.

 


LA에선 어디를 가도 차를 한참 몰고 가야 했고, 막상 가봐도 ‘음~ 그렇군’ 할 정도이거나 실망스러울 때도 많다. 후덥지근하지 않은 것은 장점이지만 아무튼 더운 날씨, 돈 안들이고 가 볼만한 곳은 대형서점이다. 지금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느라 교보문고, 영풍문고 같은 대형서점에 가봤던 때가 10년도 넘은 것 같다. 꼭 책을 구입하러 이들 대형서점에 갔던 것은 아니다. 어떤 지인을 만날 때도 요긴했지만 그냥 심심풀이로 이런저런 책들을 들쳐보는 것도 괜찮았다. 그런 아이쇼핑을 LA에서 종종 했다. 산타모니카 해변에 인접해 있는 반즈앤노블 서점은 서울의 대형서점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규모가 있었다. 안에는 스타벅스도 있었다. 한국과 달리 특이한 점은 책이 꽂혀 있는 대형 유리창을 따라서 테이블과 긴 의자들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책을 선택해서 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읽어도 직원들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국내처럼 눈치조차 주지도 않는다. 한국 만화 영어판도 조금 있고 거의 일본 망가의 영어판이 비치되어 있는 곳은 필자의 발걸음이 자주 멈추는 곳이었다.

 


UCLA 대학으로 가는 웨스트우드(Westwood) 도로와 윌셔(Wilshire) 도로가 만나는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도보 5분 거리에 괜찮은 보더스닷컴(Borders.com) 서점이 있다. 산타모니카의 반즈앤노블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어서 널널하고 조용해서 더 좋았다. 여기서 구입했던 책이 영화 ‘이터널 선샤인 오브 더 스팟리스 마인드(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시나리오였다. ‘존 말코비치 되기’ 시나리오를 썼던 ‘찰리 카우프만’이라는 작가가 썼고 ‘미셀 공드리’ 감독이 연출했고 ‘짐 케리’가 주연을 했던 어른용 동화 같은 영화였다. 극중 ‘짐 케리’가 연기한 주인공의 이름은 ‘조엘’이었다.

 


원정근무 차 LA에 숙식한 영구 아트 센터 직원은 대략 10명 내외였다. 촬영 기간 중간에 귀국한 직원도 있고 합류한 직원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 집에 머물렀던 것 같다. 어쩌면 가장 먼 거리로 MT를 온 느낌이었을 지도 모른다. 엄청난 자본이 투여된 영화를 마침내 촬영하는 매우 긴장되는 나날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분위기는 여행을 떠난 것처럼 좋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청춘낭만적인 감정에 취해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떤 직원은 결혼해서 어린 자녀가 있었고, 어떤 직원은 한참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었고, 대부분 한국에 애인이 있어서 그런지 모두 한결같이 빨리 귀국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LA에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니라 회사 업무의 연장으로 출장을 왔기 때문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LA에서 차 없이는 아무데도 못 간다. 촬영장과 임시사무실을 신속하게 이동시켜줄 운전기사가 필요했다. 백인 두 명이 그 일을 담당했다. 한 명은 몇 년 전에 한국의 공중파 TV에도 나왔었다고 했는데 필자가 방송프로를 전부 본 것이 아니라서 모르는 얼굴이었다. 또 한 명의 운전기사는 그의 고향 친구였다. 서로 친했던 죽마고우 같았다. 고향은 ‘보스톤’인데 음악 밴드를 하는 부푼 꿈을 품고 LA에 왔다고 말했다. 이 운전기사의 이름은 ‘조엘(Joel)’이었다.

 


'조엘'은 한국 원정근무자들이 다 좋아했다. 다소 어누룩한 말투, 친절, 다정함, 성실함, 느긋함, 순수함... 이런 단어로 그를 표현할 수 있겠다. 대개 학창시절에 교회에 나가봤던 사람은 이런 분위기를 느꼈을 수도 있다. 여러 여학생들 중에 귀여운 오빠를 따르는 무리와 멋있는 오빠를 따르는 무리로 나눠져 있다는 것을. 이들 두 무리의 중간에는 다정한 오빠가 끼어있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백번 인정하지만 이성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다정한 오빠. 조엘은 교회에서 누나나 여동생이 시시콜콜한 문제로 오랫동안 대화할 수 있는 다정한 오빠의 성격으로 보였다.

 


뭔가의 목적으로 친구 또는 지인을 만나서 본래 자신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장해서 생활할 때가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생활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흔하다. 어쩔 땐 자신이 이중인격, 속물이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해보기도 한다. 주위에 그렇게 많은 지인으로 둘러싸여있어도 뭔가 부족하다. 외롭다. 혼자 있고 싶다. 나를 좀더 이해해주는 죽마고우가 그립다. 이제는 죽마고우 중에서도 등수를 매기고 관리하는 시대가 된 듯하다. 아내도 남편도 어느덧 불 같은 연애 시절이 저물고 서로에 대해 눈치를 봐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익숙해져서 몸에 녹아들어갈 때까지... 문득, 술 한잔을 하면서 신세타령,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눌 친구가 간절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찾게 되는 이가 조엘 같은 사람일 것이다. 이런 설명으로 조엘이 대충 어떤 성격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한국 원정근무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운전기사였다.

 


필자는 한참 촬영이 진행되던 중에 어쩌다 디워 임시사무실에 가볼 일이 있었다. 이무기가 힘겹게 올라간 63빌딩보다 높은 고층빌딩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ㄷ’ 자 형태의 3층 정도 건물이었다. 본래 용도까지야 알 길이 없지만 현재는 주로 다양한 영화사들이 일시적으로 임대해서 사용하는 용도의 건물로 보였다. 어느 날 다른 영화사의 직원이 무언가를 빌리려고 찾아왔다. 여자 두 명이었다. 원하는 것을 빌려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여자들이 되돌아갔을 때 디워 임시사무실에 있던 한국인 남자 직원들이 일제히 감탄의 환호성을 질렀다. 숨이 멎을 만큼 예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 뿐이었다. 유창한 영어가 되었더라도 대화를 엮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하물며 중학생 정도의 회화실력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 순간 누군가 “아~ 조엘이 있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고 모두 공감한다는 짧은 말을 내뱉었다. 이 에피소드로도 조엘에 대한 한국 직원들의 친근감이 어땠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디워 임시사무실은 총 2개였다. 한 곳은 좀 넓고 현지에서 고용된 사무직원(현장 직원이 아니라 현장에서 본 적은 한두 번 정도)가 썼다. 나머지 한 곳은 한국인 프로듀서와 심감독이 썼다. 심감독 전용 탁자 옆에는 보기에도 굉장히 비싸 보이는 디지털 편집기가 있었다. 그것으로 전날 촬영본을 임시로 러프하게 편집해서 살펴보는 것 같았다. 따끈따끈한 영상을 살펴보며 CG팀의 의견을 듣고 혹시라도 발생할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혹시 원정근무자 CG팀의 자리도 궁금할지 모르겠다. 그 시기에는 가늠하고 맞춰보는 정도의 CG 작업을 하러 왔기 때문에 별도의 공간을 할당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CG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촬영이 끝나고 국내로 돌아와서 심여를 기울여 철야작업을 했을 것이다. 다만 사무실 임대 비용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현지 사무직원이 사무실로 출입하는 통로를 개조해서 여러 대의 CG 컴퓨터를 배치해 놓았다.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필자도 처음에는 별도의 사무실로 착각했었으니까 말이다.

 


어느 날 필자는 어떤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고 이메일을 쓰고 있었다. 조엘이 어딘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른 영구 아트 센터 직원들과 잡담을 하고 나서 우연히 필자의 모니터를 봤다. 필자가 한글로 타이핑을 하고 있던 화면이었다. “우아아아~ 골치 아파.” 깨알같이 써내려가는 한글을 흘끔 보자마자 기겁을 하고 가버렸다. 그러고 보니 한글이 로마자 알파벳에 비하면 얼마나 오밀조밀 깨알 같은가? 한자는 더 심하게 오밀조밀하지만 한글과 알파벳처럼 음소문자가 아니라 상형문자이므로 같은 체급이 아니니까 제외하고 말이다.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데 한글을 거의 처음 보는 어떤 외국인에게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UFO를 타고 온 지적외계인의 문자처럼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나중에 조엘과 잡담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전자기타를 잘 치고 노래도 잘 한다고 했다. 필자는 얼터너비브 록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고,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스, 펄잼,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인큐버스... 여러 록밴드를 열거했다. 그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엘은 커트 코베인처럼 소리를 지르는 창법으로 노래를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특유의 부정 제스쳐를 하면서... 그 제스쳐가 참 재밌었다. 특이한 것은 조엘은 ‘에이브릴 라빈’을 전혀 몰랐다. 처음에는 필자의 발음이 잘못되었나 해서 천천히 조금 다르게 발음해봤다. 전혀 모른다고 했다. 모를 수도 있다. 뮤지션 지망생이 그 시대에 유명한 뮤지션을 모두 알아야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조엘은 촬영 현장에 거의 없었다. 그의 업무는 현장일이 아니라 승합자 운행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현장에 더 많은 시간 동안 있었더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꼭 필자만의 바램은 아니었다. 영구 아트 센터 원정근무자 모두의 바램이었을 것이다. 촬영현장에서 유일하게 부담없이 말 붙이기 좋은 백인이었다. 그냥 편했다. 대화하기 좋았다. 잘 받아줬다. 딱딱하고 당당하고 쿨하고 계산적이고 성공한 유명인 동양인이 아니라면 왠지 모르게 내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대하는 보통 백인들과는 달라 보였다. 물론 그의 속마음까지야 알 도리가 없지만 지내는 동안 겉으로 보여지는 그의 성격은 위에서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좋았다. 그렇다고해서 다른 백인들이 나빴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저 선입관이며 편견일 수도 있다. 좀 더 친해질 기회가 많았더라면 나름대로 각자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지의 것에 대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이 편견과 선입관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흔하다. 그것을 잘 극복하는 능력도 21세기 현시대에서 잘 살아가는 요긴한 미덕일 것이다.

 


계속...

 


2007년 8월 18일 (초안)
2021년 8월 21일 (약간 수정)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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