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만든 이미지

2번째, 3번째 이미지는 '디워' 영화에서 캡쳐함

 

 

(2007년 8월 10일에 적었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재업)

 

 

 

코리아 타운에서 도요타 센터까지 거리의 서너 배는 더 달렸다. 남미 서민층 거리는 진작에 끊겼고 그린벨트 같은 녹음지대를 지나니까 한 눈에 봐도 휴양 도시(마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윌셔 웨스턴에서 1시간 30분 정도는 날린 것 같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일반 도로로 말이다. 왜 그랬냐면? 그게 좋다. 스쳐지나가는 각양각색의 건물, 시원한 공기, 이국적인 풍경이 좋았다. 서울도 강북구, 동대문구, 강남구, 강동구, 수도권 도시들이 제각각인데 그보다 훨씬 넓은 LA야 오죽했을까.

 


처음 가 보는 곳이었다. 디워 촬영이 아니었다면 평생 그곳에 갈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워 촬영을 쫓아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경기도만한 LA 주변을 두루 돌아다닐 수 있었던 점이다. 이런 관광을 하기는 매우 힘들다. 할 수 있더라도 적잖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비용은 둘 째 치고 재미와 아련한 감동이 이보다는 못 할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고 하지 않은가.

 


앞서 적었던 산타모니카 해변을 10분 못 간 지역에 위치한 마을은 열 살도 넘어 보이는 굵은 나무들로 울창한 동네였다. 그러나 오늘 이 마을은 조금 달랐다. 주로 크고 작은 야자수 위주다. 울창하지도 않았다. 산타모니카 해변에 비해 훨씬 남쪽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촬영 장소는 유일했다. 디워 촬영 장소 중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해 있었던 것이다. 태평양. 멀어서 그렇지 직진하면 동해와 만나는 태평양.

 


고려청자 빛깔의 하늘, 짙고 깊은 푸른 바다, 우렁찬 파도의 출렁거림, 고운 빛깔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조금 밖으로는 트랙이 있고, 그 길을 따라 숙박시절, 유락시설, 상가, 단독주택들이 늘어섰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검은 썬글라스를 낀 키 165 가량, 하얀 피부를 그을리면서 달리는 미녀, 필자도 모르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혹시 ‘제시카 알바’일지도 몰라. 닮았다. 가까이 다가오더니 필자의 앞을 지나갔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실망. 피부를 보니 거의 50대였다.

 


백인 여자들은 피부가 약해서 금방 늙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정말 그랬다. 언젠가 핫도그와 콜라를 먹으며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한국을 생각했을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정말 멋진 여자였는데 가까이서 보면 예상했던 나이보다 15살 정도는 더 들어보였다. 이는 할리우드 스타 보도블록 거리, 베버리 힐즈 거리를 거닐며 지나쳤던 백인 여자들 죄다 그랬다. 백인 여자는 멀리서 볼 때, 그리고 스크린에서 볼 때만 아름다운 것일까? (이 글이 영어로 번역되지 말기를...) 다소 재미를 가미해서 적었을 뿐이다. 현실을 말하면 황인종 피부, 백인 피부, 다른 인종 피부 각자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혼재하는 매력이 있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카메라팀은 행여라도 모래 알갱이가 카메라에 들어갈까봐 안절부절 조심했다. 이해한다. 햇볕은 쨍쨍 내리쬐지만 한국의 한여름 날씨와는 전혀 달랐다. 습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조하다. 얼마나 건조하냐하면 집에서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머리를 살짝만 닦아줘도 5분 정도 지나면 완전히 건조되었다. 머리카락이 길더라도 급하지 않으면 굳이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요즘 같은 날씨에 한국에서는 두세 시간 후에나 자연적으로 머리가 마를 것이다. 미국 영화를 보면 샤워를 끝낸 배우들이 특별히 닦지도 않고 물기를 줄줄 흘리면서 돌아다닌다. 그게 문화겠지만 그렇게 했을 경우에 5분도 안 되서 자연적으로 마른다. 물기가 금방 증발된다. 건조한 기후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말이다. 피부가 금방 늙는다고 한다. 그래서 백인 여자들이 그렇게 빨리 쭈글쭈글해지는 지도 모른다. 물론 동양인이나 흑인에 비해 피부가 얇은 편인 것도 한 몫 거든다. 같은 한국인이라도 LA에서 오래 살았던 한국인의 피부가 더 늙는 편이다. 

 


키스 했다. 남주인공 '제이슨'과 여주인공 '아만다'가 키스했다. 스포일러라고 할 것까지야 없지.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키스하는 장면은 너무 흔하지 않은가. 백주대낮에 백사장에서 베드씬도 아닌데 뭘.

 


촬영감독 휴버트와 간간히 틀어지고 삐지기도 잘하지만 여리고 성격은 좋은 편인 퍼스트 카메라 기사 '아이켄(Aiken)'은 스테디캠을 착용하고 좋은 앵글을 잡느라 고군분투하며 펭귄 걸음으로 백사장을 뒤뚱거렸다. 펭귄 걸음은 심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그때는 아니었지만 촬영중 현지인 스탭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심감독은 펭귄 걸음과 영구 연기를 살짝 보여줬었다. 어땠냐구? 당연히 촬영장은 일제히 박장대소하며 뒤집어졌다. 누군가 심감독을 한국의 '찰리 채플린'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백사장 한가운데 스탭들이 알아서 준비해 놓은 파라솔, 그 아래 모니터 서너 대, 그걸 주시하며 느긋이 앉아 모니터링 하는 심감독, 잠깐 먼 태평양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디워, 반드시 흥행시키고 말테다.'

 


필자의 추측일 뿐이다. 바다를 바라보면 인간은 누구나 그 위압감에 눌려 감성적이 된다고 한다. 혹자는 모성애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열 달 동안 엄마 뱃속에서 잠수했다가 나온다. 바닷가에서 키스 장면이 많은 것도 바다를 보면 인간이 감성적이게 되기 때문이라고 책에서 읽은 것 같다. 하지만 너무 많이 써먹어서 식상하다. 그러나 그 식상함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세상 모든 영화와 예술 작품이 죄다 백남준, 피카소처럼 파격적이라면 피곤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키스했다. 여러 번. 제이슨과 아만다가 해변가를 걷다가 키스하는 장면을 필자도 열심히 메이킹을 찍었다. 그게 필자의 일이기도 했지만, 그런 장면은 재밌다. 좀더 몰입되었다. 연기일 뿐이지만 부럽다.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연기일 뿐이고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키스, 베드씬 하는 게 그다지 ... 부럽다는 생각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냥 지켜보는 게 재밌다. 키스는 애인과 단둘이, 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에서, 그런 데서 하는 게 좋지.

 


서너 테이크를 촬영했다. 키스 장면 말이다. 심감독이 OK 사인을 내자 필자는 카메라 테이프를 앞부분으로 되돌려 아만다와 제이슨에게 다가갔다. 잘 됐다고 생각되는 키스 컷을 잡아서 말이다. 당연히 심감독이 시켜서 그렇게 한 것이다. 햇볕 쨍쨍, 맑고 시원한 바닷바람, 우렁찬 파도 소리... 그래서... 우리는 바짝 달라붙었다. 아만다, 제이슨, 필자, 그리고 누군가 다른 스텝이 끼어 있었지만 기억은 안 난다. 그 순간이 유일하게 여주인공 아만다와 필자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때였다. 그냥 좋았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거대하게 투자된 영화의 여주인공 바로 옆에 바짝 붙어서 손바닥으로 햇볕을 가려서 모니터에 그림자를 드리워서 아만다에게 방금 전 키스 장면을 보여주는 그 상황... 아련한 추억이다. 아만다는 필자를 보고 활짝 웃어줬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미국의 공중 에티켓으로서의 미소와 '잘 봤어요' 라는 의미.

 


그 후 좀 떨어진 다리 위로 필름 카메라가 이동해서 제이슨이 해변가를 걷는 장면을 원경 촬영했다. 어떤 멕시코 남자가 다정하게 필자에게 다가와, 어떤 영화냐고, 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소니사 제품이고 자신도 가지고 있다고, 그냥 다정하고 물어왔다. 주변에는 관광객도 많았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기러기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수평선까지 섬 하나 안 보였다. 미국 지도의 서부 해안을 보면 거의 섬이 없다. 깨끗하다.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았다. 여기 저기 걸어서 이동했기에 피로했고 역동적인 장면도 없었지만 그 촬영 장소의 느낌이 꽤 기억에 남았다. 석양이 지는 붉는 광선의 장관은 한국 서해안이나 미국 서해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자는 전체적으로 붉은 빛깔의 유화 속을 거닐었다. 고호나 마티스가 그린 그림이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2021년 다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그곳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확히 어딘지는 모른다는 점이다. LA 중심가에서 일반도로를 따라 1시간 30분 정도 남쪽으로 달리고 난 후의 해변가라는 것만 기억날 뿐.)

 


또한 점심을 먹었던 야외 간이식당 배경으로 크고 작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그때가 유일하게 심형래 감독, 제이슨 베어, 아만다 그리고 필자가 바로 마주보고 앉아서 식사를 했던 때였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어떻게 앉다보니 그렇게 된 거였다. 그만큼 심감독은 격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쉽고 편하게 대했다. 어쩌다가 심감독과 필자가 같이 앉게 되니까 바로 뒤따라오던 주연 남녀 배우가 동석한 거였다. 가까이서 보니 짜식들, 두 배우를 말하는 거다, 잘 생겼고, 예뻤다. 아만다는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더 예뻤다. 하긴 대부분의 충무로 여배우도 그렇다고 들었다.

 


지금(2007년) 돌이켜보면 나름 환상적이었다. 바로 뒤에 태평양이고, 요트들이 정박해 있고, 그렇게 재밌게 봤던 전설적인 TV 스타 '영구'가 감독이 되어서 미국땅 LA 해변가에서 필자 옆에 앉아 이런 저런 농담으로 (한국말과 콩글리쉬로) 할리우드 주연급 두 배우와 껄껄대며 식사했다. 그냥 좋았고 감동적이었다. 그런 상황이 아련한 추억이다. 생각하면 별거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3년이 다 지나가는데도 그 촬영 장소에서 느낀 아련한 느낌들이 아직도 마음속에 붉은 노을의 유화물감으로 짙게 그려져 있다. (2021년 현재 세부적인 기억은 거의 사라졌지만 좋았던 느낌만은 어렴풋이 메아리친다. 영화에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요트 한 대가 나오지만 촬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난다.)

 


PS: 필자가 언젠가 다시 LA 영화 촬영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그럴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 꼭대기에서 물구나무 설 확률이지만, 그 해변가에 다시 가보고 싶다. 또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해변가라도 괜찮다. 아니면 돈 많이 벌면 그런 곳에 숙박하면서 소설 한 권, 시나리오 한 편을 탈고해서 돌아오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의 어느 해변가 마을에 숙식하며 '노르웨이 숲'을 탈고했던 것처럼...

 


계속...

 


2007년 8월 10일 (초안)
2021년 8월 20일 (약간 수정)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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