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이미지 2개 모두 2007년에 만듬

 

(2007년 8월 6일에 적었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재업)

 

 

 

"쉬는 날 없이 일한다면 한 달 평균 천만원 벌어요." 조명장비와 배선을 담당하는 스탭이 말했다. 동양인이었다. 약간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동남아시아인인가? 추측했었다. 알고 보니 한국인이었다. 영구 아트 센터 원정근무자가 아니라 LA 현지 스탭 소속이었다.

 


순전히 LA 도심지 입장에서 윌셔(Wilshire) 대로가 동서를 가로지르는 횡선 도로 중에서 유명하다면 웨스턴(Western) 대로는 남북을 가로지르는 종선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둘 다 코리아타운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두 도로는 옛 명성이 더 빵빵했다. 지금은 영화 '여인의 향기'의 퇴역군인처럼 밀리는 감이 있다. 윌셔와 웨스턴이 교차하는 지역에 살았던 백인, 유태인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한편, 웨스턴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달리면 끊임없이 낡은 단층 상가 건물이 늘어선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변색된 색깔로 써진 건물 간판은 죄다 스페인어다. '산 페드로 (성 베드로)', ‘무챠스 그라샤스(땡큐 베리 마취)’, ‘엘 폴로 로코 (남미 패스트 푸드 일종)’

 


91년산 세이블 승용차도 아직 쓸만했다. 에어컨, 히터도 없고, 동그라미를 몇 번 그려야 창문이 개폐되지만, 잘 달리면 장땡이지. 비록 안테나가 고장났지만 벙어리는 아닌 라디오, 잡음이 뒤섞였어가 아니고, 영어멘트와 팝송이 싫어서도 아니고, 고지식한 정서면서 버터를 발라놓은 듯한 한국어 방송이 싫어서도 아니다. 듣지 않는 이유 말이다. LA 현지에서 운전 생활이 아직 서툴어서였다. 신경이 온통 운전에 쏠렸을 때는 아무리 좋은 음악도 머리를 찌르는 금속이다. 그랬었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지금은 ‘인큐버스(Incubus)’ 밴드의 ‘스텔라(stellar)’를 듣는다. 테이프다. 같은 집에 하숙하는 옆방 친구가 빌려줬다. 나중에 새 CD로 사줘야지. 십 몇 년 전 서울에서 추억을 LA에서 간혹 되새겼다. 테이프 늘어지는 소리, 씹히는 소리. 지금은 아니다. 오전 8시 32분 웨스턴 도로 남쪽으로 달리는 지금은 상쾌하게 들린다.

 


50분 정도 달렸지만 오랜 걸린 건 아니다. 다른 로케이션 장소에 비하면 말이다. "젠장!" 전날 받은 촬영장소 약도를 보자마자 튀어나왔다. 'Oh my God!' 하마터면 이 말이 앞지를 뻔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좌회전이나 우회전 없이 직진했다. 바로 저기서 딱 한번 우회전해야 촬영장에 갈 수 있는데... 마침 고속도로(freeway)로 진입하는 길목이라 기다리는 차들이 빼곡했다. "덜덜덜..." 내 신체 반응 의태어가 아니다. 서행하는 91년산 세이블이 실제로 내는 소리다. 우회전도 못 하고 떠밀려서 교차로를 직진해야할 직전에 누군가 양보해줬다. 낡은 트럭이다. 살았다. 그에게 답례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활짝 “You're welcome.” 답하는 히스패닉 아저씨. 순간 슈퍼 마리오가 떠올랐다. 덩치 비율이 비슷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땡큐, 마리오!"

 


그렇게 도요타 센터에 도착했다. 오늘 촬영 장소다. 낮은 건물들이 ㄱ자 ㄴ자 ㄷ자로 늘어섰다. 그 중에 한 건물, 그곳만 유일하게 인파로 붐볐다. 스탭들이다. 건물 내부는 실제 사무실과 똑같다. 추측컨데 실제 사무실로 사용됐던 건물인데 얼마 전 이전했고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전까지 방치되던 중인 것 같다. 그러나 아닐지도 모른다. 텅 빈 공간인데 미술팀이 촬영 전에 미리미리 그 많은 사무집기를 죄다 배치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폐업한 병원 건물에서 병원 씬을 촬영했다. 카메라에 잡힐 가능성이 제로 퍼센트고 실제로 촬영이 끝날 때까지 필름에 담기지 않은 사무실 책상 위에 낡은 서류철, 볼펜, 프린터기, 성인잡지...... 남주인공 ‘이든’과 그의 절친 동료 ‘브루스(크레이그 로빈슨 분)’의 사무실 씬에서 엑스트라들이 배경에서 업무하는 모습이 한두 컷으로 찍혔으니 사무집기가 필름에 담기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메이킹을 찍던 나는 미처 카메라 앵글을 피하지 못 하고 배경에 숨었다. 책상 밑에 엎드렸다. 생각보다 촬영은 길어졌다. 함부로 고개를 들었다간 무슨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지 두려웠다. 피곤했던지 스르르 눈이 감겼다.

 


우르르... 엑스트라들이 나가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카메라팀은 먼 쪽에서 주인공이 노트북을 살펴보는 장면을 찍을 준비를 했다. 심감독도 좋은 컷을 잡기위해 고심했다. '이쪽 앵글은 끝났구나.' 일어나는데 뺨에 달라붙어 있던 종이쪽지가 떨어졌다. 마침 그곳을 지나치던 여자와 나는 동시에 그 종이를 쳐다봤다. 수영복 차림의 여자 모델이 태평양 어떤 섬에서 자신을 만나러 오라는 광고사진이었다. 내가 일어선 바로 그 책상 위에는 뭔가에 꾹 눌려진 잡지가 펼쳐져 있다. 내 뺨이 그랬나보다.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무표정하게 지나갔다. 하얀색과 노란색의 중간색 헤어다. 길다. 하얀 피부, 창백한 얼굴, 삐쩍 말랐다. 하얀 솜털도 많겠지.

 


그 여자가 뭔가를 들고 가서 카메라팀원에게 전달했다. 카메라 렌즈박스다. 그 여자는 카메라 스탭이였다. 첫째 날 골동품 창고 촬영 때도 있었던가? 워낙 경황이 없던 터라 내 시선에 포착되지 못 했나보다.

 


영화촬영 스탭들은 분야별로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본인들도 느끼는지 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연출팀원들은 마케팅, 보험판매원 같이 외향적이고 당당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지만 속은 냉정하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편이다. 카메라팀원들은 차분하고 매니악적이고 폐쇄적이고 내향적이다. 꽁생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가끔 지들끼리 낄낄거리며 웃지만 촬영장 전체가 박장대소하는 에피소드가 생겨도 무뚝뚝할 때도 있는 이들은 카메라와 관련된 스탭들이다. 아마도 직업병. 늘 예민하게 조심스럽게 섬세하게 정밀하게 카메라를 조작해야하니까 그렇겠지. 사소한 것 하나 실수하면 몇 백, 몇 천만원이 날라간다. 때로는 영화 자체가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사람이 직업을 선택하지만 직업도 사람을 새로운 인간으로 만든다.

 


그 여자는 카메라팀에서 홍일점이었다. 담당하는 일로 봐서 견습생, 보조인 듯했다. 특이한 것은 카메라팀원들의 생김새, 표정, 행동양식 등을 봤을 때 전형적인 대도시 백인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LA 백인들이 어떤 사람인데?" 라고 물으면 굉장히 길어지고 설명하기도 힘들다. 느낌의 일부일 뿐이다. 촬영감독 휴버트가 폴란드 출신이라서 카메라팀원들 모두 슬라브족처럼 보였다. 아마도 선입견이겠지. 한국에서 학연, 지연이 있듯이 미국에선 민족연이 존재한다. 전혀 근거 없는 얘기도 아니다. 언젠가 UCLA에 다니는 영화평론을 전공하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들은 얘기, 같은 백인이라도 유럽, 특히 동유럽에서 온 백인들은 차별 받는 편이란다. 어쩌면 백인들이 보기에 한국인이 베트남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을 약간 차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유태인들은 지들끼리 똘똘뭉쳐서 금융권, 영화자본 등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그 여자는 슬라브족이라고 하면 딱이다. 그녀가 부정하면 '착각했네' 하겠지만 긍정하면 '역시' 할 정도다. 특유의 무표정이 앞권이다. 대개 미국 백인들은 잘 웃는 편이다. 상대방이 싫건 좋건 상관없이 말이다. 그건 공중도덕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공중도덕을 잘 모르는 유교문화에 익숙한 한국 남자는 때때로 오해할 수도 있다. "저 여자가 나만 보면 활짝 웃어. 다정하게 인사하고 너무 친절해. 날 좋아하나봐." 전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냥 공중도덕이고, 일상생활이고, 자신은 그렇게 오픈마인드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성경의 누군가처럼, 그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스텔라’ 노래를 부른 ‘인큐버스’ 카세트테이프를 빌려준 옆방 친구는 언젠가 선셋(Sunset) 거리의 카페에서 ‘브래드 피트’를 만나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냥 다가가서 마치 본래부터 알고 지낸 동네 사람처럼 인사하고 악수했다고 한다. '브래드 피트'도 티셔츠 상의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지금은 헤어진 TV드라마 ‘프렌드’에 나왔던 여배우 '제니퍼 애니스톤'도 있었다고 들었다. 상대방의 친절과 미소는 미국에서는 그저 공중도덕이고 에티켓일 뿐이다. 대개는 진심어린 호감과 무관하다. 실제 속마음은 좀더 많은 시간을 지내봐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 공통이다.

 


그러나 그 카메라팀원들은 그런 스마일 LA 매너가 없었다. 작업에 몰뚜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좀 겪어보니까 본래 그런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한국 사람과 비슷하다 볼 수 있다. 메이킹을 찍으면서 슬라브족 여자를 살펴보니까 그녀도 그런 성격이었다. 거의 웃지 않았다. 가끔 웃는 경우에도 스마일 LA 매너의 자연스러운 미소가 아니고, 스스로도 자주 취하지 않는 안면 근육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의식하는 그런 미소였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여자로 치자면 도도하고 냉정한 명암이 강조되었다. 세상 남자가 죄다 귀엽고 상큼한 여자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하기는 한다. 그 여자는 건조하고 도도한 매력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어필될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몸매는 왜소하며 날씬했고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네 생각은 어떤데?"라고 누군가 필자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필자의 생각을 대신하겠다. "이름이 스텔라라면 어울렸을 거라 생각해." 그 슬라브족 여자가 실제로 어떤 여자인지 좀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정도 글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디워 촬영장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아마도 최적의 인원만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 슬라브 여자는 다른 영화 현장으로 출근해서 일했을 것이다. 이처럼 촬영 초반의 스탭이 모두 끝까지 지속된 것은 아니다. 물론 각 파트 밑에 스탭 얘기다. 조감독, 촬영감독, 미술, 특수촬영 등의 각 분야의 리더들은 거의 끝까지 참여했다.

 


한국에서 심감독과 함께 날아온 한국인 스탭을 제외하고 필자도 제외하고 순수하게 미국 현지인 스탭 중에 동양인이 딱 2명 있었다. 이전에 말했던 ‘아더(Arthur)’와 같은 레벨의 연출부 스탭인데 아마도 태국 출신인 것 같았다. 원래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무뚝뚝한 성격인지, 아니면 한국인을 싫어하는지 필자와는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필자와 달리 고된 일을 하느라 바빠서 그랬을 수도 있다. 물론 필자도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 태국인도 매일 나오지는 않았고 대규모 군중 씬이 있어서 수많은 엑스트라를 통제할 일이 있었을 때 출근해서 아더와 같이 일했다.

 


또 한 명의 동양인은 촬영이 있는 날 2시간 먼저 도착해서 아이들 팔뚝 굵기 전선을 발전차에서 끌어와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배선하는 일, 조명 등을 옮기고 설치하는 작업을 하는 30대 초반 남자였다. 조명 키잡이(조명 감독의 역할이지만 한국의 조명감독보다는 역할이나 권한이 많이 약하다)는 아니다. 조명 키잡이는 삐쩍 마른 백인이었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더 나온다.

 


되게 반가웠다. 필자가 말이다. 그 한국 남자는 스마일 매너가 넘쳤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필자를 반가워해야할 이유는 없었다. 부모님은 한국에 계시고 고등학교 때 유학 와서 LA에 있는 유명한 영화학교도 나왔다고 했다. 필자는 그가 일찍 깬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청바지와 티셔츠 위로 람보의 트레이드마크를 거미줄처럼 달고 있다. 탄약이 아니라 전기배선과 조명 설치에 쓰이는 각종 금속장비와 공구를 마치 탄약을 차듯 끼워 넣었다. 대화하면서도 한쪽 의식은 무전기에 연결시켜 놓았고 실제로 대화 중 무전기로 솰라솰라 유창하게 말하더니 사라졌다가 다시 만나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이런 작업을 여러 번 했고, 영화학교 졸업 후 단편영화도 만들었고, 향후 목표는 할리우드에서 영화감독으로 활약하는 거라고 했다. 그를 통해서 디워의 실제 영화 제작 규모가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정도 버짓(Budget)이면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도 큰 편이에요. 슈퍼 대규모는 아니지만, 즉 에이 플러스 급은 아니지만, 에이급이나 비 플러스급은 될 겁니다."

 

필자는 그의 직업으로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궁금했다.


"쉬는 날 없이 일한다면 한 달 평균 천만원 벌어요."


놀랐다. 부러웠다. '그 정도 벌이면 감사하지' 라는 필자의 부러움은 오래가지는 않았다. 미국에선 웬만한 직종의 어떤 경력 레벨에 올라서면 그 정도 월수익을 버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저런 명목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한국에 비하면 많기는 하다. 이후에 디워 촬영 장소 옆에 다른 영화 촬영도 있었는데 거기서 트레일러 운전으로 몇 년 경력을 쌓은 한국 아저씨도 월수익이 칠팔백만원 된다고 들었다. (2005년의 얘기니까 2021년 현재는 좀더 많이 벌고 있을 것이다)

 


허름한 청바지 차림이고 장래에 영화감독이 목표인 그 조명 담당 한국인 남자는 도요타 승용차를 타고 귀가했다. 내심 그가 부러웠다. 그가 할리우드에서 감독으로 성공하기를 바랬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은 나중 일이긴 해도 그 순간은 그가 부러웠다.

 

"왜 헐리우드에서 그가 감독으로 성공하기 어렵지?"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주겠다. 이 말은 실제로 LA에 있을 때 한국인 독립영화 촬영감독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동남아시아인 감독 지망생이 충무로에 와서 영화감독을 목표로 노력한다고 생각해봐. 그거랑 똑같지."

 

물론 미국은 다민족 국가고 캘리포니아주에서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니 그 말이 100% 들어맞는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과 한국은 다른 점도 많고 한국과는 다른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는 그다지 화창하지 않다. LA 할리우드 현장 말이다. 단적으로 이런 예로 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디워 LA 현지인 스탭들 중에 95 퍼센트는 백인이다.

 

그나마 5% 유색인종도 전문 영화 스탭이라기보다는 육체적 노동 강도가 쌘 스탭에 가깝다. 물론 한국과 달리 노가다를 해도 좋은 도구들이 많아서 힘이 덜 들고 수익도 많아서 나름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또한 비록 현장에서 노가다를 한다고 해도 절대로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디워의 경우 5%에 속하는 유색인종은 동양인 2명, 남미인 4명(여자도 있었는데 중간에 남미흑인으로 교대)이다.

 


LA에서 영화제작 스탭으로 일하는 것은 꽤 괜찮은 전문직에 속하는 것 같다. 돈도 많이 벌고, 안정되고(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이 100년 전에 생겨서 지금까지 건재하다고 하니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여자들이 성격차이라는 이유를 대고 차버리는 배우자의 직업 순위에 올라있지도 않고 오히려 선호하는 쪽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아직 동양인이 넘어야 할 산이 높다. 그러나 일단 인정받으면 기회는 탄탄대로를 달릴 것이다. 디워가 미국 영화계에서 성공하면 심감독은 미국 영화계에서 작업하고 싶은 한국 영화감독 1순위가 될 가능성도 높다. 그는 이미 미국 영화제작 시스템을 몸소 체험했고 그것을 훌륭히 소화하지 않았는가.

 

 


ps: 조명팀에 뚱뚱한 남미인 남자와 여자가 일했는데 처음에는 서로 부부라고 추측했었다. 꽤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혹시 남매였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쫑파티에 남미인 남자는 배 나오고 두꺼비 같은 몸매였는데도 불구하고 동행한 여자는 몸매는 말할 거도 없고 정말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애인이냐, 단순 친구냐, 남매냐, 부부냐는 두 사람이 춤추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표정만을 봐도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애인사이 또는 부부로 보였다. 이처럼 미국에서 영화 제작 정식 스탭은 알아주는 직업군에 속한다. 한국에선 각 파트의 리더격 스탭이 아니라면 막말로 고만고만하게 근근이 살아갈 수 있는 생활비를 버는 정도의 직업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정상적인 생계유지와 미래 인생을 꾸려가기 쉽지 않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물론 LA 할리우드 영화 스탭들이라고해서 전부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대개라는 통계치로 두 나라를 비교하면 매우 많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계속...

 


2007년 8월 6일 (초안)
2021년 8월 19일 (약간 수정)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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