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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칼럼] 냉동두뇌(Frozen Brain) 상품

by 김곧글 Kim Godgul 2021. 5. 23. 22:58

Frozen Brain

 

 

 

죽은 사람을 냉동해서 보존해주는 상품을 제공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은 수십년 전부터 알려져온 일이다. 불치의 병으로 또는 자연사로 죽은 사람이 과학이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한 미래 시대에 해동되어 깨어난다면, 미래의 후손들이 발전된 생명 연장의 기술을 발휘하여 새 삶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품고 이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을 해동해서 새 삶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미래 문명이라면 아마도 다른 과학 분야도 동반적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인체 장기 뿐만 아니라 몸의 구석구석 모든 조직과 세포 심지어 DNA까지 인공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관련하여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인간을 냉동 보존하는 상품과 차별적으로 오로지 인간의 두뇌만을 냉동 보존해주는 상품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차피 인체의 전부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미래의 과학기술 정도는 되어야 냉동을 해동시켜서 새 삶을 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인체 전부를 냉동 보존하는 것보다 단지 두뇌만을 냉동 보존하면 같은 보관소 공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냉동인체보다 냉동두뇌를 훨씬 많이 보관할 수 있다. 때문에 가격도 많이 다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억 단위로 소요되는 비용을 5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발전된 미래 과학기술이 냉동두뇌를 해동해서 인공인체(인공인체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처럼 실제 인간의 인체와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는 수준)에 장착되어서 깨어난 두뇌에게 아니 사람에게 새 삶을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또는, 지금의 과학기술로는 상상만으로 가능한 스캐닝 기술로 두뇌의 일체를 구석구석 스캐닝하고 전자화(데이터화)하여 메타버스 같은 가상공간 속에서 한 명의 디지털 인간으로 깨어나서 새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메타버스 가상공간은 지금 우리 시대의 온라인 게임 비슷한 수준 정도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때는 거의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정도의 가상현실일 것이다. 기술이 월등히 발전되었다는 가정 하에 실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과 구분하기 힘들 것이다.

 

 

언젠가 TV외화 ‘환상특급(Twilight Zone)’으로 봤던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어떤 젊은 부부가 자녀들과 함께 봄날의 푸른 정원에서 행복하게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 남자에게 평소에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데 간헐적으로 시야가 일그러지고 잡음이 들려온다. 그는 정신을 잃었지만 얼마 후 의식을 되찾고 평소처럼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그 주인공 남자가 실제로는 미래의 어떤 시대에 마치 와인 저장소처럼 어두침침한 저장소에 길게 늘어서 있는 튜브들 중의 한 곳에 들어가서 ‘20세기의 평온하고 행복한 가정’ 테마의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실제 세상과 똑같은 가상현실 세계 속에 로그인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들어가 있던 튜브 장치에서 갑자기 에러가 발생해서 치명적인 고장이 발생했다. 남자 주인공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 시야가 일그러지고 잡음이 들려온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과학자(또는 엔지니어)들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튜브 장치 앞에 서서 주인공 남자는 그 가상세계에 갇혀서 영원이 빠져나올 수 없다고 혀를 차며 측은해한다. 끝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은 (실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른 채) 다시 평상시처럼 시야가 일그러지거나 잡음이 들려오는 일도 더 이상 발발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되돌아온 상태로 부인과 아이들과 더없이 행복하게 살아간다. (필자의 오래된 기억에 의존해서 적었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전체 줄거리는 대략적으로 이렀다. 이 에피소드는 영화 ‘메트릭스’가 나오기 전인 1990년대에 TV로 봤었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실제와 같은 가상현실 세계를 만들지는 못한다. 가까운 미래에도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시각적으로 그럴듯하게 보여줄 수 있는 정도까지는 될 것이다. 그러나 먼 미래에는 특별한 장비를 사용해서 확인하지 않는다면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정도로 월등히 발전될 것이다. 미래에 냉동두뇌가 해동된다면 인공인체에 장착되어 살아갈 수도 있고, 또는 실제같은 가상현실 세계에 들어가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옵션 중에 ‘자신은 과거에 살았던 조상인데 냉동두뇌로 보존되었다가 많은 세월이 흘러 깨어나서 실제와 똑같은 가상현실 세계에서 평온하게 살고 싶다고 선택한 것’ 자체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냉동두뇌에서 해동된 두뇌의 사람은 가상현실 세계를 실제 세상으로 인식하고 일생을 살아갈 것이다.

 

 

다시 현시대로 돌아와서, 냉동두뇌 상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업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차적인 상품의 수요가 늘어나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것은 반려동물의 냉동두뇌 상품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일부 부유층들만 이 상품을 구입하지만, 시간이 흘러 중산층들도 많이 구입하게 된다. 먼 미래 언젠가 자신과 동거동락하며 서로에게 삶의 위안을 주었던 반려동물과 함께 해동되어 깨어나 새 삶을 사는 것도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늘 그렇듯이 모든 것이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먼 미래의 후손들이 해동되어 깨어난 냉동두뇌가 인공인체와 결합해서 새 삶을 얻은 사람들을 (비록 실제 인류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지만) 사회적으로 차별을 하기도 한다.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을 차별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별인 것이다. 그런 사회적 문제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법률이 존재하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일거수일투족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와중에 온전한 냉동인체로 해동된 사람들은 냉동두뇌로만 깨어난 사람들과 자신은 다르다며 함께 어울리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냉동두뇌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냉동인체에서 깨어난 사람들보다 월등히 많다. 뿐만 아니라 후손들은 냉동인간이나 냉동두뇌 인간이나 같은 분류로 생각한다. 일정 기간 동안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 힘을 합쳐 자신들만의 도시를 건설해서 그럭저럭 잘 살아가게 된다. 재밌는 것은 그들이 만든 도시가 현시대 즉 20세기 또는 21세기의 어떤 도시를 복사하듯이 만들었다. 자신들의 진한 향수를 달래고 위로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갈증이 심했는데, 과거의 도시를 재현해서 살아가는 것이 그런 것의 일환이었다. 미래 후손들 중에 일부는 이 도시를 순전히 관광을 즐기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추가로, 아직은 사회가 이런 것을 수용하지 않겠지만 언젠가 냉동두뇌가 사회적으로 보편적이게 되면서 일부 사적인 단체들(예를 들어, 과학자, 정치가, 사회 운동가, 박애주의자, 프로 스포츠맨, 예술가...)은 단원들이 추켜세우는 인물에게, 즉 천재(소위 몇 십년 또는 몇 백년 만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에게 단체의 기금을 사용하여 무료로 냉동인체 또는 냉동두뇌 상품을 구입해주는 일도 생길 것이다(물론 자산이 많은 사람은 스스로 하겠지만 천재와 비슷한 능력의 사람이 반드시 자산이 넉넉하라는 법은 없으므로). 천재들이 미래에 다시 태어나서 미래 사회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과 관련하여 어떤 거대한 범죄 조직의 두목과 간부 또는 사이코 패스 범죄인이 자신이 죽었을 때 신분을 세탁해서(속이고) 냉동인체 또는 냉동두뇌 상품을 구입하는 일도 발생할 것이다. 이들이 미래에 다시 태어나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하고나서 미래 후손들은 냉동인간 또는 냉동두뇌를 해동하고나서 새 삶을 주기 일보직전에 일종의 잠금장치를 하고 (왜냐하면 뇌가 정상적으로 살아있는 상태에서만 최대한 정확하게 구석구석 스캔할 수 있으므로) 살아있는 두뇌를 스캔해서 혹시 치명적인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이라고 밝혀지면 다시 냉동시켜서 보존해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된다. 그런데 기업체에서는 다시 냉동해서 보관하면 그것에 대한 비용을 자회사가 추가적으로 충당해야했기 때문에 불법적이지만 그 범죄인의 범죄 관련 기억을 모두 삭제하고나서 사회에 내보낸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 기억이 삭제된 범죄 조직의 두목, 간부, 암살자, 사이코패스 냉동두뇌 인간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불쑥 자신의 과거 기억이 일부분씩 회복되면서 패닉 상태에 빠져서 자살하기도 하고 또는 본래의 자아로 돌아가서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범죄인의 삶으로 살기도 한다. 이런 사건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일부 대중들은 냉동인간 또는 냉동두뇌 인간 전부를 싸잡아서 경멸하고 차별하기도 한다.

 

 

냉동인간, 냉동두뇌 상품은 해를 거듭할수록 구매자가 늘어나지만 어느 순간 폐업하게 된다. 당분간은 아니고 과학이 발전해서 인간의 두뇌를 완전히 전자화(컴퓨터 데이터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굳이 인간의 두뇌를 냉동으로 보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는 인간이 죽으면 즉시 두뇌에 있는 온갖 내용을 전자화해서 데이터로 보관해서 (인간의 두뇌 일체의 데이터를 보관해주는 상품이 잘 팔릴 것이다. 그러나 이 상품에 대한 비용은 냉동인간, 냉동두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헐값일 것이다) 당장은 가상세계에서 살아가다가 좀더 미래에 인공인체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면 실제 세상에서 인공인체라는 의체를 입고 새 삶을 살아갈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상상은 지금의 과학문명이 계속 성장한다는 가정 하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암울한 미래(핵전쟁 이후, 운석의 충돌 이후,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공격, 환경파괴, 자연재해, 외계인 침략)으로 인류의 문명이 몇 천년 뒤로 후퇴한다면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2021년 5월 23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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