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In The Sell (1995)

 

 


1995년에 공개되었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최근에 다시 감상했는데 이전에는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보였던 것도 있었다. 대부분은 시각적으로 맛있는 것들이었는데 내용에 관한 것도 있어서 적어본다.

 


개인적으로 20세기에 상영되었던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에 SF라는 장르로 한정한다면 ‘아키라(Akira)’, ‘마크로스 극장판(비주얼의 퀄리티가 TV판과 완전히 딴판)’ 그리고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ell)’를 최고로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현실 또는 가까운 미래 사회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공각기동대’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두뇌가 전뇌(electronic brain)화될 정도의 고도로 정보화되었지만 국가와 민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근미래’, 비록 현시대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고도로 정보화된 사회는 매우 유사하고) 멀지 않은 미래에 상당부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이 작품이 단독적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불세출의 명작이란 얘기는 아니다. 원작 만화책의 저자 ‘마사무네 시로우’도 말했듯이 198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사이버펑크(cyberpunk)’ 장르문학의 후광을 매우 잘 계승한 훌륭한 작품이다.

 


예전에 봤을 때는 못 느꼈는데 최근에 다시 감상하면서 다시 느꼈던 것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해커가 정부조직의 내부 요원 통역사의 고스트(전뇌를 가진 자들의 의식, 영혼)를 해킹하는데, 일종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도구로 청소차를 타고 거리를 이동하는 청소부를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청소부(이 시대 사람들의 두뇌는 전체 또는 일부가 전뇌화되어 있다)의 본래 기억은 삭제되고 거짓 기억이 심어졌고(유사체험,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것을 경험한 것으로 확신), 그는 해커에 의해서 주입된 거짓 기억이 본래 자신의 기억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행동한다. 그의 행동은 해커가 정부조직의 내부 요원을 해킹하는데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런 해커를 ‘인형사(puppeteer)’라고 부른다. 아주 적절한 용어인 것 같다.

 


인형사에 의해서 인형처럼 조종되는 껍데기 인간은 과연 무엇을 은유하는 것일까? 이 에피소드 자체로도 미래에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긴하다. 다만, 좋은 SF는 모름지기 현시대(정확하게는 영화가 출시된 1995년 즈음)을 반영하는 거울이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전뇌화된 인간은 전무하고 앞으로도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나 가능한 테크놀로지이고 그것도 특별한 경우에만 전뇌화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이런 사건이 표면적인 모습 그대로 가까운 미래에 재현될 것 같지는 않다. (생각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글자를 타이핑을 하는 정도는 조만간 일반화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을 조작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테크놀로지이다. 일단 전뇌화가 실현되어야 하는데 그런 단계는 가까운 미래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이 사건은 현대인에게 무언가를 은유한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은유하는 바는 바로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세뇌되어 그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사리분별력을 잃고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그가 시키는대로 무조건 행동하는 부류의 일부 현대인을 은유하는 것 같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이비교주와 열혈 신도들이다. 사이비교주는 인형사이고 열혈 신도는 인형이다. 열혈 신도는 자신의 가족과 연을 끊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이비교주에게 바치고 (이것은 자기 자신의 과거가 삭제된 것과 동일하다) 그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삶에 만족을 느낀다. 설령 그것이 보편적인 사고방식의 정상인들이 보기에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일지라도 말이다. 이런 것을 은유한 것이 바로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해커)와 기억을 조작당한 인형(청소부)라고 생각되었다.

 


(여담으로, 삶에 활력을 주는 또는 그럭저럭 사회가 수용할만한 사이비종교적인 성격의 무엇도 있기는 하다. 어떤 대상에 강하게 열광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무엇이다. 정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어떤 현대인에게는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 해악적인 진짜 사이비종교와 사회가 수용가능한 일종의 사이비종교 성격의 무엇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것도 심도 깊에 들어가면 논쟁거리가 많겠지만 가장 보편적인 관점으로 생각하면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인간적이고, 범사회공존적이고, 개인과 가족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의 존속’을 인정하는 범위에 존재하는 무엇이라면 사회가 어느정도 수용할 수 있는 사이비종교 성격의 무엇일 것이다. 이런 예를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지칭하는 것은 먹으면 무조건 지옥으로 직행하는 독버섯 같은 성능의 사이비종교를 말한다.)

 


정보화가 고도로 발전한 요즘 시대에 비록 전뇌화되거나 기억이 해킹당하는 일은 없지만 이 에피소드로 은유된 사이비교주와 열혈 신도라는 현대사회의 암적인 범죄는 바로 코앞에 닥친 다양한 ‘메타버스(metaverse) 가상세계(virtual reality)’가 활개를 칠 차세대 정보사회에서 더욱더 빈번하고 다양하게 발생하는 범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소위 인형사(조종자, 지배자)는 굳이 종교라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평범한 인간을 인형으로 만들어 조종할 것이다. 그 비슷한 예가 얼마 전 국내에서 발생했던 ‘N번방 사건’ 같은 범죄이다. 또는 최근에 발생한 세 명의 자녀가 타인(세 자녀의 어머니의 친구)의 조종을 받아 그녀들의 친부와 친모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수차례 집단폭행한 사건도 있다. 그저 평소의 친분과 스마트폰과 SNS만으로 이렇게 누군가를 조종할 수 있는데 하물며 훨씬 몰입이 강력해지는 메타버스 가상현실이 일반화되는 시대다면... 사이비교주 범죄는 암세포처럼 증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서 사이비교주는 굳이 기존의 종교를 도구로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인형사는 평범한 사람을 그저 한낱 인형으로 둔갑시켜 어떤 목적에 사용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릴 것이다. 아이와 청소년과 노인이 인형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성과 자아가 완숙한 성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또는 일시적으로) 누군가의 인형이 될 리는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마치 보이스피싱을 평범한 정상인이 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속담이 여기에 어울릴 것이다. 메타버스 가상세계가 스마트폰 메신저만큼 일상화되는 시대가 되면 어떤 기업체들은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사람들은 새로운 감각의 흥미진진한 삶을 살아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기술의 발달이 늘 그렇듯이 어두운 측면도 독버섯처럼 증식하기 마련이다. 이것을 슬기롭게 대비하는 개인의 생활지혜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할 시대인 것이다.

 


공각기동대를 다시 감상하면서 평범한 시민 청소부가 자신도 모르게 기억을 조작당한 에피소드를 보고 근미래(오늘날의 입장에서는 메타버스 기상현실이 일반화되는 근미래)에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범죄(‘인형사’라는 범죄자와 ‘인형’이라는 피해자, 예를 들어, 사이비교주와 열혈 신도) 사건을 은유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기에 글을 적어봤다. 정말 필자가 우려하는 대로 이런 범죄의 증가 그래프가 메타버스 가상세계의 기술 발전 그래프와 비례할지 말지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4월 30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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