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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고, 수개월 전에 책도 구입했었다가, 최근에 감상했다. 만화계에서는 워낙에 유명한 명작이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만화가 ‘마츠모토 타이요(Matsumoto Taiyo)’의 초기작이다. 만화잡지 연재 후에 1994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니까 나름 오래된 고전에 속한다. 그러나 (어린애들이 주인공인데) 다소 잔인한 폭력성의 묘사로 인하여 국내에서는 2007년에 이르러서야 정식 번역 출간될 수 있었다. (또는 명성과는 별개로 상업성이 없어 보여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림체는 낙서풍이지만 당시에는 신선하고 파격적이고 미래적이었으며 세월이 많이 흐른 최근에 봐도 은근히 세련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불가항력적으로 독자의 취향을 강하게 탈 수 있다는 단점도 지녔다. 영화로 치자면 스펙터클하고 익숙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정서가 아니라 낯설지만 심연을 건드리는 독립영화 정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음악 분야의 1990년대를 생각해보면, 미국에서는 얼터너티브 록, 영국에서는 펑크 장르의 전성기(또는 그런 코드가 메이저시장에 스며드는) 시대였고 그때에는 이런 느낌과 정서가 나름 통하는 시대였었다. 적어도 미국과 영국에서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만화책은 서구문화권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높았던 일본 만화였다. (자국 일본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장편 애니메이션이 2007년에 만들어진 것을 보면 명성에도 불구하고 범 대중적인 정서는 아니었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이야기는 타카라쵸(영어 번역: Treasure City)라는 도시에서 쿠로(Black)와 시로(White)라는 어린 고아 불량 청소년이 활약하는 이야기이다. 이들을 둘러싼 각자 사연 있는 경찰, 야쿠자, 노숙자, 사기꾼, 암살자... 등등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엮어진다. 초반에는 이런 인물들이 다소 들쑥날쑥 교차편집으로 등장해서 신경 써서 감상하지 않으면 인물의 이름과 특징과 사연을 헷갈릴 수도 있다. 그만큼 편집이 간결하고 압축적이란 의미도 된다. (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서 역시 서구문화권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공각기동대’ 만화책의 쥐어짠 편집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끝까지 야무지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대충 흘려 읽지 않는다면 이야기에 빠져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후반부에 가면 문득 요즘 시대 유행 문구가 떠오를 것이다. “다 계획이 있었구나!”

 


초반에는 주인공 시로와 쿠로의 이런저런 흥미로운 에피소드 위주의 이야기의 나열인 것처럼 보였는데,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조연들이 느와르적인 죽음에 이르고, 쿠로와 시로는 다소 진지해지고 심리적인 고뇌로 몸부림치는 인물로 바뀐다. 개성 넘치는 그림체와 마찬가지로 총 3권이라는 짧은 분량 치고는 인물과 이야기의 확연한 변화가 아닐 수 없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달리 말하면, 초반에는 소박한 액션 독립영화 같은 정서가 지배적이었는데 후반부에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고뇌하는 슈퍼히어로물 느낌이 났다. 게다가 조커와 비스무리한 악당까지 등장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매달 연재를 하면서 인기를 끌게 되니까 후반부에는 소위 출판사 편집자의 입김이 가미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작가도 당시에는 신인 작가 계층이었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의 뜻대로만 작화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을 것 같다. (정확하지 않은 필자의 추측일 뿐이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으니 좋은 게 좋은 것이리라.

 


끝장을 덮고 나서, 좀더 길었더라면, 더 보고 싶은데, 하는 아쉬움이 온몸에 메아리쳤다. 특유의 작가적인 그림체도 매력적이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여러 편 출간되었지만 각 작품마다 그림체의 매력이 차별되는데 개인적으로 이 만화책의 화풍이 가장 마음에 든다 (어쩌면 포스트 모던적인 이야기와 매력적인 주조연 캐릭터와 탈주류적이면서 세련된 감성 때문인지도) 마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유명한 소설가는 초창기 작품이 가장 좋았다는 평을 듣는 경우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요즘은 웹툰 같은 디지털 화면으로 소화하는 만화가 대세인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종이책 만화의 매력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언젠가부터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고전만화를 재출간하는데 (한국에서는 대략 15년 정도 전에 크게 유행했었고 표지만 다시 디자인하고 다른 모든 것은 거의 과거 원본과 똑같이 만들었던 것과는 달리) 수년 전부터 재출간되는 작품 중에는 판형을 크게(oversized 또는 완전판) 만드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비록 가격은 상승했지만, 추억의 과거와 달리 인쇄 상태도 좋고, 종이질도 좋고, 무엇보다 (과거 독자 중에는 상당수 노안이 온 경우도 있을 것이다) 크고 시원스럽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하여 소유욕을 자극한다. 마치 끊임없이 성능 좋은 모니터와 TV가 제작되어 판매되는 것처럼 일단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은 크게 만들어서 재판매하는데 팬들에겐 매우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식의 작품 중에 (과거에는 ‘아키라’ 만화책이 대표적이었고) 최근에 구입해서 만족하고 있는 작품이 ‘츠토무 니헤이’ 만화가의 ‘블레임(Blame)’이다. 국내판도 해외판 못지않게 잘 인쇄되어 제작되었다. 반대로 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 ‘공각기동대 영문판’이다(국내판은 큰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 필자는 ‘철콘 근크리트’ 만화책이 판형을 크게 늘리고 총 3권을 한 권으로 합본한 영문판을 온라인으로 구입했다. 특이한 점은 이 영문판이 한국에서 프린트되었다고 쓰여 있다. 다만, 독서 방향이 일본식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가 아니라 미국식과 한국식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뀐 점은 아쉽다. 매우 드물지만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로 보여지기도 하고 대사의 독해 순서가 작가의 의도와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도 매력적인 그림체를 크고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이 작품에는 개성 넘치는 인물들 외에 타카라쵸 도시가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마치 배트맨과 조커가 티격태격하는 고담시티(Gotham City)에 비견될 만큼 존재감이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3권이라는 짧은 분량에서 이 도시는 매우 급변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여러 인물들이 이런 것에 대해 한탄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을 수 있다. 그래서 필자가 보기에 타카라쵸 도시는 메타포적으로 인간의 ‘세월’을 은유한다고 생각된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서 모든 게 급변했어.” 이런 말에서의 ‘세월’이 타카라쵸 도시를 대표하는 표식인 듯하다.

 


여담이지만 도시 얘기가 나왔기에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을 언급하자면, 초반에는 타카라쵸 도시 여기저기에 한글 낙서와 간판이 심심찮게 등장해서 이국적인(또는 다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완결될 때까지는 더 이상 그려지지 않았다. 이것도 어쩌면 잡지의 편집자의 입김이 반영되어서 부득이하게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왜냐하면 굳이 초반의 매력적이고 독특한 환경 설정을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컷들의 그림들을 잘 살펴보면 소위 ‘디테일’이 살아 있기에 (비슷한 말로 ‘다 계획이 있었구나’), 한글 낙서와 간판이 사라진 것이 단순히 작가가 무심결에 놓친 부분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작가가 이 작품의 후속작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주인공이 나이를 먹어서 질풍노도의 젊은이가 되어 활개를 친다면 ‘마츠모토 타이요’스러운 코드와는 다소 어긋날 것이고, 노인이 돼서 손자들(새로운 조연들)과 얽히는 이야기라면 어떨까? 아니면 비록 황당하지만 작품의 코드와 무관하지 않게 어떤 외계인 종족이 타카라쵸 도시를 점령해서 차근차근 인간을 잡아먹고, 최면을 걸고 조종해서 자신들의 도시로 만들어 가는데, 바다가 보이는 전원에서 평화롭게 살던 시로에게 지구를 지켜달라는 미지의 메시지가 소라껍질 속에서 들려와서, 시로는 쿠로를 이끌고 다시 타카라쵸 도시로 돌아가서 외계인으로부터 여러 시민들을 구하는 활약의 이야기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2021년 3월 20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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