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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악녀 연기로 유명한 ‘로자먼드 파이크’의 주연으로 인하여 기대감이 증폭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에게 붙은 꼬리표가 싫지 않은지 즐기는 듯한 신들린 악녀 연기를 펼친다. 관객은 분명히 그녀가 본질적으로 악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매력을 지나치지 못 한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면 당연히 손사래를 치겠지만,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교활하고 영리한 여우의 느낌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와는 별도로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초반에는 마치 대기업 이미지 홍모 영상물을 차용한 듯한 미려한 영상미가 괜찮았다.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는 때려죽이고 싶은 사기꾼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제3자의 입장에서의 관객이 볼 때는 그녀가 어떻게 사기를 잘 치는 지에 촉각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보이스피싱을 하는 전화선 저쪽의 착하거나 순수하거나 정직하거나 권위적인 목소리의 사기꾼이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그저 이웃집 휴학생 같이 생긴 똘마니(쫄따구, 잔챙이, 찌끄레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얼마 전까지 치밀어 올랐던 화는 자취를 감추고 ‘왜? 나를? 어떤 놈들일까? 수법의 전말은?’ 궁금증만 뱉어낼 뿐인 것과 비슷할 것이다.

 


거짓말을 해도 크게 하면 진실이 된다고 그 전무후무한 악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여주인공 ‘마를라(로자먼드 파이크 분)’의 사기행각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깔끔하고 신박하게 처리된다. 그래서 자신을 포함 누구에게도 피 한 방울 안 흘리게 하는 이야기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초반에는 그녀가 어떻게 사기를 치는 지 흥미롭게 잘 보여준다. 그런데 ‘로만(피터 딘클리지 분)’이라는 러시아 마피아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초반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채널로 전환된다. 이런 변화가 다소 호불호가 갈릴 지도 모르겠다. 혹시 유명한 헐리우드 여배우들이 여러 명 등장해서 기상천외한 사기를 치는 영화 ‘오션스 8(2018)’같은 느낌을 기대했다면 (필자도 어느 정도 그랬다) 그것은 러시아 마피아 두목이 제대로 열을 받기 이전까지 만이다. 후반부에는 본격적인 범죄물의 성격이 두들어진다.

 


클라이막스까지 긴장감과 흥미를 유지하며 잘 올라갔는데 결말로 치닫는 내리막길이 다소 허겁지겁 끝내는 것 같아 아쉬웠다. 마를라의 용맹스런 행동도 나쁘지 않았지만 좀더 치밀하거나 기발한 지략으로 재미를 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같은 속담이 떠오를 것 같은 이야기 결말이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명색이 러시아 마피아 두목, 보디가드, 운전수인데 그렇게 순식간에 여자 한 명에게 맥없이 당한다는 설정이 다소 허술해 보였다. 게다가 결말에서 충분히 그렇게 끝나는 것이 권선징악이라 수많은 일반 관객에게 불편한 감정을 전달하지는 않아서 좋았지만 좀더 흥미롭고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어땠을까? 예상치 못한 누군가에 의해서 마를라의 사기행각의 전말이 발각되어 세상에 폭로되는 (그렇다고 긴급 뉴스에 보도되는 장면은 너무 흔하니까 빼고) 장면이 선행되었다면 좀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예를 들어, 마를라의 동업자 겸 가끔 같은 침대를 쓰는 아름다운 여자친구의 배신 말이다.

 


그렇다. 재미는 충분히 있었다. 전반부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는데, 후반부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전반만큼만 매혹적이었더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아쉽다. 그렇다고 많이 안 좋았다는 얘기는 아니고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무엇보다 기대됐고 만족스러웠던 여주인공 마를라의 연기 이외에 좋았던 것은 그녀의 적수 러시아 마피아 로만의 표정 연기를 감상하는 것이 또 하나의 진국이었다. 비록 그의 신체적 조건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열등하지만 카메라 렌즈가 상반신과 얼굴을 잡고 있을 때 그의 표정과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관객의 몰입을 휘어잡는다.

 


다시 말하지만, 그 뭔가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몰입감도 있고 충분히 감상할 만한 흥미로운 영화였다.

 


2021년 2월 23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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