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arper's Bazaar 2021 Feb.

 

 

 

 


마치 오랫동안 흙먼지가 싸인 것 같은 흐린 브라운 색감 필름룩이 스토리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남주인공 이름이 절묘하게도 브라운(Brown)이다.) 여주인공 미망인 프리티(Pretty)의 저택의 사유지에 묻인 것이 과연 뭐였길레 실제 사건에 기반한 소설이 나왔고 영화까지 만들어졌을까?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멈추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된 이유는 뭐였을까? 처음에는 그 땅속에서 뭘 발견했길레 그러지? 이런 게 궁금했고 그 다음 이어서는 브라운이 그 고고학적 보물을 발굴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학식을 쌓았고 책도 냈는데도 그저 가방끈 짧은 고용된 인부라는 이유만으로 결국 세상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말인가?

 


따지고 보면 이 영화에서 발굴된 유물은 영국의 역사 나아가서 유럽의 역사에는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사는 필자 같은 소시민에게는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위대한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물을 고진감래 끝에 발굴한 불굴의 고독한 영웅과 그의 위대한 성공을 그리는 이야기는 아니란 말이다. 이런 익숙한 열정을 불태우는 영화가 아니라서 관객의 취향을 탈 수도 있다. 가계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또는 부득이하게 정해진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을 (여기서는 고고학적 유물 발굴) 흥미를 잃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종사했던 가난한 토박이 소시민 남주인공이 거의 말년에 진정한 빛을 보게 되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살아생전 돈과 명예를 거머쥐었다는 일반 관객에게 행복한 판타지를 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주인공이 죽은 뒤 한참 뒤에 대영 박물관 전시물에 이름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어떤 이에게는 고작일지 몰라도 어떤 이와 그의 후손에게는 일생을 바친 어마어마한 영광일 것이다. 아무튼 주인공은 매우 큰 공을 세웠지만 그의 사후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업계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코로나와 전시상황인 현시대에 영화 관객들은 주로 컴퓨터나 TV로 즐기는 경향으로 치우쳐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영화의 스타일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는 듯싶다. 모호하고 깊고 무거운 여운의 맛보다는 명백하고 얕고 가볍고 자극적인 짜릿함을 선호하는 것 말이다. 뭐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이런 것에 조금은 신물이 난 관객에게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작품이 아닐까 한다.

 


이 영화의 영상미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테렌스 맬릭’ 감독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시적인 영상미를 간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서로 공통적인 관심사에 의해 교감이 오가는 두 인물들이 대치되지 않는 대화를 나눌 때 반드시 말하는 인물 컷과 대사가 일치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두 인물들의 영상은 시공간의 일치를 무시하며 보여주고 대사는 나레이션 느낌으로 깔아준다. 그러다 후반부에는 관객에게 익숙한 보통 대화 장면으로 맺어줌으로서 두 사람의 대화를 색다른 감각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관객이 알아볼 수 있다. 이런 영상미가 묘하게 시적이게 느껴지고 좋았다.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소박한 실제 기반 이야기인데 영상미마저 평범했다면 정말 지루했을 터인데 이 영화는 특유의 시적인 영상미가 잘 사용되어서 좋았다. 그리고 여러 인물들의 예전 시대 작품에서 미덕이었지만 현시대 작품에서는 가물에 콩 나듯 어쩌다 볼 수 있는 인간적인 감성이 잘 표현되었다. 이야기는 드라마틱하지 않더라도 뭉클했던 장면들이 몇몇 있었다. 또한 몇몇 대사들은 한낱 인간의 덧없는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명대사이다. 아무개가 땅을 파서 고고학적 가치가 엄청난 유물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표면적인 것이고 이 사건을 통해서 고고학의 진정한 의미 또는 인간의 삶에 대해서도 비록 파편 한 조각이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게 한다.

 


     프리티(Pretty): 잘 하는 걸까요? 남의 무덤을 파내는 거요.
     브라운(Brown): 그보다는... 삶이 어땠는지 밝히는거죠.

 


이 대화에서 도굴꾼과 고고학자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둘 다 누군가의 무덤을 파헤치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인 짓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도굴꾼은 자신의 사리사욕인 돈벌이를 위해서 하는 짓인데 반하여, 고고학자는 까마득한 옛날 사람의 생활상이 어땠는지 밝혀내서 문명의 생명력에 기여하는 일이다.

 

 

2021년 2월 3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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