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으로 올린 사진 (본 글과 직접적으로 무관함)

 

‘디에나’와 키스하기

 

 

 

얼마 후면 이사 가야 할, 이곳 옥탑은 내 삶에 있어서 적지 않은 페이지를 차지하고도 남는다. 거의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전망 좋은 단칸방에서 뒹굴었던 20대 후반의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추억이었다.

 


그 중에서도 바로 아래층 주인집에 사는 ‘디에나’라는 섹시녀(sexy girl)는 나에게 여자라는 존재에 다시 눈을 뜨게 만든 매개체였다.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몇 달 후에 죽어도 못 헤어질 것 같던 여자친구가, 회사 친구의 소개로 만난 어떤 녀석과 결혼한다고, 순수한 젊은이의 건강한 심장에 대못을 박는 일과 맞먹는, 끔찍한 통보를 듣고 실의에 빠져있던 시기에 이곳 옥탑방으로 이사 왔다.

 


옥상이라서 좋았던 점은, 밤에 방문 밖으로 나가면 캄캄한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사방으로 이웃집들이 겹겹이 뻗어있는데, 가끔 엿보기 욕망을 충족시켜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흔하게 자극적으로 상상의 날개가 펼쳐지는 남녀 간의 그렇고 그런 숨을 헐떡이는 장면은 없었다. 기껏해야 여름에 아주 짧은 핫팬츠와 얇은 티셔츠를 입은 젊은 여자가 수박을 먹으며 TV를 보는 장면 정도랄까.

 


더군다나 나는 그런 장면 따위에 흥미가 없다. 내가 매사에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보는 행위 자체는 그저 욕망만 부추길 뿐, 별로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러 아래층 주인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며칠 전에 새 집주인이 이사왔다는 소식을 동네 구멍가게 아줌마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나보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주인집 딸 디에나라는 여인과 내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고, 그 이후로 이국적인 그녀의 매력적인 얼굴과 몸매는 내 안구에 판박이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언젠가 텔레비전의 어떤 프로에서, 이태원인가 압구정동을 거니는 좀 잘 나간다는 미녀들을 인터뷰해서 서양남자와 연애하는 것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들은 동양남자와 다른 신체적인 특징과 기사도 정신에서 나온 신사적인 매너를 찬양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만약 그 리포터가 나에게, 동양남자가 서양여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디에나를 떠올리며, 다른 건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과 날씬하면서도 볼륨이 있을 곳에는 꽉차있어 주는 각선미가 매력적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나는 하루빨리 한 달이 지나기를 바랬다. 전기세와 수도세를 지불하러 디에나가 사는 현관문을 빨리 열고 그녀를 대면하고 싶었다. 엘르 잡지에서나 볼 듯한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외모를 갖춘 그녀를 얼른 좀 더 오랫동안 많이.

 


며칠 후, 그녀를 만날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사실 만난 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그녀를 볼 수 있었다는 정도였을 뿐. 그날은 도시까스 점검한다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아줌마가 디에나 집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꺄악! 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린 것은 내가 막 라면 속에 계란을 풀어 넣고 있을 때였다. 나는 문을 열고 디에나 집 쪽을 내려다보았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고 가스점검 아줌마가 벌벌 떨며 비명을 연거푸 질러대고 있었다. 나는 조금 떨며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나 서너 계단을 내려가다가 더 이상 내디딜 수 없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몸이 떨렸고 심장이 뛰었다. 엉거주춤 앉아있는 가스점검 아줌마의 발 사이를 엄청나게 커다란 뱀이 흐물흐물 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서 본 그렇게 큰 뱀이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그 아줌마가 지르는 찢어지는 비명소리는 공포영화를 볼 때의 효과음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마치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에서 샤워 중에 죽는 여자가 내지르는 비명소리와 바이올린 긁는 소리가 혼합된 소음을 떠올리게 했다.

 


이어진 광경은 공포영화를 볼 때의 놀라움이 이색적인 장면을 봤을 때의 놀라움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디에나가 걸어나와 살짝 웃으면서 아줌마의 두 다리 사이를 휘어 감싸는 덩치 큰 뱀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마치 애완견을 다루듯이 양손으로 떼어내어 가슴에 품었기 때문이다. “(뱀의 머리 어디쯤에 키스하며) 우리 아기 놀랬지? 쉬이~ 쉬이~ 집에 들어가자.” 그리고 아직 혼비백산 상태로 주저앉아 있는 가스점검 아줌마를 안심시켜 준다. “죄송해요. 제가 머리염색하고 샤워하는 사이에 우리 아기 뱀이 마중을 나갔네요. 후훗...”

 


저렇게 예쁜 여자가 하필 뱀을 좋아하다니... 개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고, 새도 아니고, 혀를 낼름낼름거리는 징그런 뱀을.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 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어떤 양복점의 진열장에 좌우로 길쭉한 커다란 사진이 붙어있었는데 그 사진은 친구들 사이에 꽤 여러 번 얘깃거리에 오르곤 했었다. 그 좌우로 길다랗고 커다란 사진은 서양인 젊은 여자가 길쭉한 다리를 옆으로 쭉 뻗고 누워서 상반신을 세우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홀라당 벗고 아주 큰 뱀으로 온몸을 칭칭 감고서 (특히 주요 부분을 꼼꼼히 절묘하게 감싸고) 정면을 야릇한 표정과 열정적인 동공으로 바라보는 사진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 양복점을 지나갈 때면 거의 무의시적으로 흘끔 그 사진을 쳐다봤는데, 그때는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는데 지금 정리해 보면... 기이하면서도 묘한 매혹적인 그 뭔가가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며칠 후, 드디어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러 디에나의 집 현관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때마침 그녀 혼자 있었다. 그녀는 아주 짧은 핫팬츠에 면티를 입고서 나를 맞이했다. 나는 돈을 건넸다. 그녀는 거스름돈을 가져오겠다며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면서 집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거실을 빙 둘러 각종 파충류들이 즐비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내가 정글 속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도마뱀, 이구아나, 거북이, 뱀,.....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그런 부류의 동물들로 한가득했고, 그들이 내는 각자의 울음소리들이 뒤섞이며 집안을 맴돌고 있었고, 나는 변화무쌍한 그 소리들에 취해서 주술적인 흑마술에라도 걸린 듯이 정신이 몽롱해졌다.

 


어디선가 침팬지와 치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코뿔소와 코끼리 소리도 들렸다. 나는 양손으로 두 눈을 비비고 나서 거실을 둘러봤지만 그런 동물들은 당연히 없었다. 해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잠시 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느 순간 나 자신이 타잔의 헐렁한 팬티를 입고 현관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때 디에나가 어느 순간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나의 두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흑백 텔레비전으로 봤던 제인, 그러니까 밀림의 왕자 타잔의 여자친구 제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늘씬하고 볼륨 있는 몸매에 실오라기를 걸친 듯 안 걸친 듯 복장을 하고 나타났는데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긴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늘어뜨리고 살짝 눈웃음을 띄우는데 최근 며칠 동안 본의 아니게 꿈속에서 봤던 그녀의 육감적인 매력 자체였다.

 


디에나는 나의 손을 잡고 거실의 소파로 이끌었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이 그녀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우리는, 그러니까 나와 디에나는 소파에 거의 붙어서 앉았다.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혀를 내밀어 입술을 촉촉이 적셨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아니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중요한 것은 그녀와 내가 서로의 맨몸을 껴안았다는 점이다. 그녀의 맨살이 유난히 차가워 이상했지만 나의 몸이 너무 뜨거워서 그러겠거니 이해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서양여자의 살결은 한국여자와 달리 자잘한 솜털들이 꽤 많다고 그랬는데, 디에나의 살결에서는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는 없었다. 털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아주 매끈했다. 나는 현재 나의 감정이 활활 타올라 온전한 감각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거라고 이해했다.

 


기분은 매우 야릇했고 좋았지만 이런 일에 익숙치 않은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지식으로 알았던 로맨틱한 정보들이 지우개로 깨끗히 지워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얼핏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너무 빠른 거 아냐? 아무리 서양여자가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꼭 모든 서양여자가 할리우드 영화처럼 쉽고 가볍게 연애하지는 않는다고 들었던 것도 같은데... 그나저나 혹시 누가 들어오면 어떻하지? 만약 디에나 아버지가 들어오신다면 나는 이 집의 옥탑방에서 쫓겨나는 것은 당연할테지만 그보다 서양남자의 주먹으로 세게 맞으면 내 갈비뼈가 여러 개 으스러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이런 나의 다소 이성적인 걱정과는 무관하게 그녀는 나의 온몸을 더 강하게 껴안고 비비고 밀착시키고 조였다. 나는 다소 숨이 막혀왔지만 참고 인내했다. 그녀의 살결과 나의 살결이 마구 섞이는 동안에 다소 묘한 쾌감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디에나, 이츠 미, 파더.“

 


이 정도의 영어는 나도 알아들었다. 그녀의 아버지였다. 나는 허겁지겁 그녀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그녀는 초인종 소리와 아버지의 목소리를 못 들었는지 계속 나를 꼭 껴안고 온몸의 압박을 풀지 않았다.

 


“아버지가 왔어, 디에나.”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외쳤다.

 


그때 그녀는 나의 입술에 살며시, 천천히, 묵묵히 키스를 했다. 당연히 달콤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을 빠는 것처럼 차가웠다. 나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미칠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수많은 생각들이 폭풍속의 비바람처럼 휘몰아쳤다.

 


그때 현관문의 열쇠를 직접 따고 디에나의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그리고 매우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앉아있는 쇼파로 달려왔다. 나는 곧 맞아 죽을 거라 생각했다.

 


디에나의 아버지는 나의 멱살을 잡는 듯 했으나 그것보다 나를 꼭 껴안고 있던 디에나를 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살살 그러나 힘을 주어 움직였다. 그 순간 뜻밖의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안방 문을 열고 디에나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있었다. 한손에 영수증 뭉치를 들고 그 위에 계산기를 놓고 탁탁 두드리면서...

 


“(아버지를 보고) 아빠 왔구나! 아빠, 옥탑방 전기세 어떻게 계산했더라?”

 


그제서야 나는 완전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쪽팔렸다. 디에나와 그녀의 아버지는 내 몸을 칭칭 감고 있던 커다란 뱀을 천천히 떼어냈다. 부드러운 그리고 얼음과자처럼 차가운 뱀의 피부가 내 살결에서 떼어져 나갔다. 약간의 허물 같은 찌꺼기와 끈적거리는 액체를 남긴 채.

 


나는 나의 옥탑방으로 되돌아오자마자 양치질을 수없이 반복했다. 독이야 없겠지만(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이 살아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뱀의 침이 내 입속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다른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의 첫키스가 뱀과 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고, 뱀과 프렌치 키스까지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잠깐 아주 잠깐 혀가 들어왔다 나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주1: 이 글을 읽은 독자는 내가 왜 정든 옥탑방을 (집주인은 극구 더 살아도 괜찮다고, 월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허겁지겁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2~5년 어느 날 (1고)
2020년 3월 25일 김곧글(Kim Godgul) (2고)

 


주1: 위의 주1도 단편소설의 일부이다. 이 단편은 2000년 초창기에 어떤 텔레비전 예능 프로에 파충류를 애완동물처럼 키운다며 출연했던 ‘디에나’라는 젊은 여자 예능인이 한동안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캐릭터를 차용해서 짧은 단편소설을 적어본 것이다. 실제 디에나와 이 픽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편, 당시 적었던 글의 문장을 조금 손봤을 뿐 많이 수정하지는 않았다.

 

 

주2: 이 단편은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화자와 작가를 일치시키지는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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