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발탄(1961)’ 감상글

 

 

 

최근에 50, 60년대 한국 고전영화를 여러 편 감상했는데 그중에 ‘오발탄(1961)’도 있었다. 영화 ‘오발탄’은 한국 고전영화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며 게다가 매우 높은 위상에 올려놓아져 있다. 그 이유를 직접 감상해보고 나니 이해할 수 있었다.

 


50, 60년대 한국 영화를 많이 감상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편 감상을 거치면서 든 짧은 생각은, 아직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기 이전의 시대여서 영화 매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요긴한 오락, 여가를 제공했을 것이고, 그래서 수많은 한국영화들이 비교적 적은 예산과 규모로 짧은 시간에 양산되어서 그런지 대부분 그렇게 높은 양품 수준은 아니었다. 내용이야 한국적인 것을 신분 활용했기에 양질의 서양 영화에 비해 차별적인 경쟁력을 갖췄기에 충분히 관객에게 사랑받을 만했지만 기술적인 질을 따진다면 동시대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소위 질보다 양이었다.

 


단적인 예로, 여러 편을 감상했는데 주연, 조연 배우들이 거의 같은 사람들이다. 소위 당시 충무로가 좁아도 너무 좁았다. 어떤 유명한 배우는 한국 고전영화를 밤하늘에 비유하자면 북극성에 대입될 정도로 붙박이별처럼 열에 아홉 편에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한다. 주로 중상류층 대가족 관련 이야기가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지 영화 장면의 대부분이 주택(한옥 또는 양옥) 내부인 경우가 많았고 이는 제작비가 매우 덜 들었고 제작 기간도 짧게 소요되었다. 대량생산되면서 작품성까지 논할 시대적 상황이 아님을 이해는 되지만 계절적 특징이 이야기의 개연성에 녹아있지 못한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옥의 티일 것이다. 예를 들어, 산뜻한 봄기운의 의류를 입고 오픈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한 인물이 집안으로 들어온 연이은 장면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추위로 인한 입김이 품어져 나오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당시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현실과 밀착된 것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가미했다기 보다는 현실에서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터링한 이상적이고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계절적 괴리감도 그럭저럭 무시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현실에 밀착되지 않은 이야기인데 흑백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그깟 것을 정교하게 묘사할 이유는 제작비와 제작기간을 고려하면 충분히 무시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개연성 있고 정교한 계절 표현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다수 영화의 이야기가 이상적이거나 정형화된 틀이라는 대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기존의 국내외 명작 소설의 영향을 받아 장소만 당시 한국의 어떤 장소로 깊은 통찰로 인한 숙성적 변환 없이 표면적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이것도 부단 한국 영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시 전 세계적 추세였기는 하다. 이것을 탈피하고자 해서 나온 영화 스타일이 이탈리아에서 출현하고 발전한 장르영화로서의 네오리얼리즘인데(영화가 탄생한 시기의 리얼리즘과 구별하기 위해서 네오가 붙음), 그 당시 최신식이고 고차원적이고 우아하고 신선한 네오리얼리즘을 수용해서 당시 한국 현실을 직시하고 장르오락영화라는 정체성도 잃지 않고 작품성 있게 잘 만든 것이 바로 영화 ‘오발탄’인 셈이다. 또한 이후에 한국에서 서민들의 또는 낙오자의 또는 소시민의 현실에 밀착하고 직시한 드라마적인 영화(일명 칙칙하고 침울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가 많이 제작되어 간간히 큰 인기를 끄는데(60년대 중반 ~ 70년대, 예를 들어 ‘엄마 없는 하늘 아래’ 그리고 80년대에는 군사정권의 억압의 영향으로 극적으로 에로틱한 것과 결합해서 발전, 예를 들어, 매춘녀, 타락한 여자와 순수한 사랑을 하는 소시민 남자) 그런 거대한 강줄기의 선구자적 입지에서 높은 영화적 완성도와 작품성까지 갖췄기에 한국 영화사에서 높게 평가되는 것 같다.

 


물론, ‘오발탄’ 원작소설이 훌륭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 보여줬느냐의 관점에서 매우 출중하여 동시대 한국 영화들과 비교하면 영화적인 매체의 특징을 활용한 기교의 관점에서 군계일학이라고 추켜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만약 현시대에 단순히 여가로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이 ‘오발탄’을 감상한다면, 그냥 평범하고 지루해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동시대 한국 영화들을 인내력을 갖고 여러 편 연이어 감상하던 관객이 ‘오발탄’을 만나는 순간,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화적 기교가 월등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과는 별개로 영화 매체의 기교를 매우 잘 활용한 고전 한국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카메라를 사용하는 세련된 기교가 자꾸 말하지만 동시대(심지어 이전 이후 10년을 아울러) 다른 한국영화들과 비교해서 월등히 군계일학이다.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세련되기까지 하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해방촌에 즐비한 하꼬방(판자집)에 사는 수많은 빈민층의 출구 없는 인생의 애환, 한국 사회의 핵심인 서울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장르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잘 표현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세련미를 갖췄다는 부분은, 주인공이 세 명이라고 볼 수 있는데, (명확하지는 않고 모호하다), 세 번째 주인공은 일종의 요즘 시대에는 거의 사라진 관찰자적 주인공의 전형으로 볼 수 있는데 두 번째 주인공과 비교해서는 사건과 행동이 약한 편이지만 영화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 관객의 감정이입을 가장 많이 이끌어내는 실제 주인공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물론 두 번째 주인공을 실제 주인공이라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이들 세 명의 남자 주인공이 눈에 띄게 구분되면서 세 개의 에피소드 이야기가 나열되는 현시대에 익숙한 방식은 아니라는 점, 큰 이야기 속에서 알 듯 모를 듯 주인공이 바뀌고 바뀌는 형식미에서 지금 봐도 세련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이런 형식미의 아이디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매우 잘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당시 영화에서는 거의 대부분,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장소로서의 다방(카폐)에서 인물들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올 때는 일반적으로 손님들이 많거나 적은 아무튼 영업 중인 잘 정돈된 다방인 경우가 일반적인데(요즘이야 다양하지만),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내부 인테리어 수리가 한창 중인 다방 또는 바 같은 곳에서 주 조연 인물들이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니지만 옛날 한국영화라는 것을 감안하고 보면 세련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두 번째 주인공이 이런 저런 사연을 겪고 은행을 터는 내용으로 귀결되는데, 그 시대 상업영화를 감안하면 성공하고 나서 나중에 경찰에 검거되는 편이 관객이 짜릿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으로, 차를 몰고 갔던 동료는 총소리에 놀라 혼자 도주하고, 돈가방을 멘 주인공은 홀로 뛰어서 달아날 수밖에 없었는데, 서울의 종로를 지나, 청계천의 지하도로를 도주할 때는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고 당시 빈부격차의 현실 또는 애환을 짧고 굵고 극명하고 무덤덤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이 경찰을 피해서 청계천 지하로 도주하는 중에 총질도 주고받는데, 어느 순간 화면 밖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쳐 울려 퍼진다. 관객은 청계천 물가에서 놀던 아이가 총소리에 놀라서 울어대겠거니 정도로 상상하게 된다. 주인공이 쫓아오는 경찰을 피해서 도주하는 긴박한 상황에 갑자기 움찔하고 멈춰서서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의 시선 전방에 어떤 아줌마가 포대기로 감싼 어린애를 등에 업고 서 있었고 그 아이가 우렁차게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청계천의 기둥에 가려서 아줌마의 옆모습은 전부 보이지 않는데 (비록 매우 짧은 순간이지만) 관객은 아이 보다 나중에 상황 파악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아줌마는 아이를 업은 채 목을 매서 자살한 것이다(얼핏 보기에는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둥 때문에 얼굴은 안 보이지만 목을 맨 동아줄이 상황을 명확히 설명한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애엄마는 인적이 드문 청계천 지하에 와서 애를 업은 채로 목을 매서 자살까지 했을까? 당시의 시대적 상황, 빈부격차 등을 극명하게 매우 짧은 순간에 인상적으로 세련되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주인공은 훔친 지폐 다발 가방을 메고 있지만 죽은 애엄마도 울부짖는 아이도 그냥 지나쳐 도주를 이어갈 뿐이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의 상투적이지 않은 세련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번째 주인공으로 메인시점이 옮겨지면서 관객은 그의 억눌린 고뇌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는 직접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몸소 개입하지 않고 사건들의 결과에 영향을 받는 일종의 관찰자적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영화의 종반부가 미지근하지만도 않다. 앞에까지 감상한 관객이라면 그의 고뇌에 감정이입되지 않을 수 없게 영화가 잘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 수감된 동생을 면회하고 집에 돌아온 세 번째 주인공은 여동생으로부터 아내가 급성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갔으니 어서 가보라고 듣는다. 어쩌면 지금쯤 아기를 낳았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여기서도 아이러니컬하고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여동생이 취업도 안 되고 남자친구(첫 번째 주인공)도 그녀를 버리고 멀리 떠나고 해서 결국 미군을 상대로 매춘을 해서 돈을 버는 양갈보(영화속에서 나오는 단어)가 되어 돈을 벌고 사는데, 그렇게 번 지폐 다발을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려는 오빠에게 선뜻 떨구어준다. 앞서 그(세 번째 주인공)은 양갈보를 하기 시작한 여동생을 한지붕 집구석에 살면서 매일 지나치면서도 모르는 사람처럼 무시했던 터라 이 장면이 아이러니컬하고 당시 사회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 세련된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언젠가 어떤 방송프로에서 이 영화를 얘기했던 것을 들었는데, 소개하던 사람(전문 영화평론가는 아니었고)이 이 영화의 줄거리를 선뜻 간결하게 얘기하지 못했는데 (중간에 끊김) 최근에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쉽고 재미있고 인상적이고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행여나 줄거리를 말로써 조리있게 전달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십중팔구 지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소설도 요약영상도 텍스트도 다 필요없다. 당시를 겪은 사람이 아니라면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하면서 다 봐야 제대로 그맛을 느낄 수 있다. 물론 한국사회의 시대적 상황이 그때와 지금은 천지차이로 다르니까 요즘 시대 일반 관객에게는 매우 지루하고 볼품없겠지만, 한국 고전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은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해야할 명작이다. 한국 고전영화 역사에서 톱 5 안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는데, 각자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누군가는 ‘하녀’를, 누군가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누군가는 ‘자유부인’을, 누군가는 ‘별들의 고향’을, 누군가는 ‘연산군’을, 누군가는...... 선택하겠지만 아무튼 이 영화 ‘오발탄’은 필자의 생각에 톱 5 중에서도 최고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선뜻 일반인 관객에게 추천한다면 다른 작품을 추천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소화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참고로, 제목 ‘오발탄’의 뜻은, 총이나 탄환의 고장으로 잘못 발사된 탄환이 과녁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어떤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비유해서, 희망찬 앞날을 꿈꾸며 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영화에 표현된 것이 사실이라면, 당시에는 현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병원행정도 있었던 셈이다. 즉, 임산부가 아퍼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죽었는데, 보호자 남편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보호자의 허락도 없이) 불과 1시간 후에 화장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한국전쟁이 휴전한 이후 몇 년 지났을 때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황당한 병원행정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영화에서 세 번째 주인공이 고뇌하는 것은 부인이 애를 낳고 죽었다는 사실 때문이지, 병원의 황당한 행정 때문에 고뇌하거나 거액의 고소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다른 여담은, 당시에는 택시에도 안내원이 있었던 것 같다. 조수석에 남자가 앉아서 손님을 응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요즘 청소년들은 시내버스(시외버스도 마찬가지)에 여자 안내원이 있었던 시절을 모른다고 하던데 (초등학교 이전 아이들은 집에 유선 전화기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당시에는 택시에도 안내원이 있었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나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2020년 3월 19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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