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구한 사진 (아래 내용과 무관함)

 

 

내 사랑, 러브돌(Lovedoll)

 

 

#1 이성호 아파트 (오전)
자명종이 울린다. 자동으로 시끄러운 음악이 CD데크에서 시작된다.
침대 위에 이성호가 여자M을 부등껴안고 자다가 눈을 비비며 깬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난다. 여자M은 계속 자고 있다. 그는 욕실로 향한다.
이불과 혼합되어 있는 여자M의 관능미가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잠시 후, 성호는 세미정장을 입고 서류가방을 메고 나가려다 말고
침실로 다시 되돌아와서 잠자고 있는 여자M에게 가벼운 키스를 하고,
침대 위 베개에 붙어있는 어떤 여자 얼굴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집어서 주머니에 넣는다.

 


#2 도시 풍경 (오전)
빠르게 달리는 지하철, 버스, 택시, 승용차.
으리으리하고 빽빽하고 차가운 마천루 사이로
무뚝뚝하게 바삐 걷는 정장차림의 남자, 여자.
횡단보도를 빼곡히 휘몰아치며 이동하는 도시인들.
어떤 낡은 커다란 빌딩, 회전문을 통과해서
묵묵히 걸어가는 주인공 성호.

 


#3
타이틀: 내 사랑, 러브돌(Lovedoll)

 


#4 칸막이가 즐비한 사무실 전경 (점심식사 직후)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에 집중하는 많은 사원들.
고스톱을 몰래 하다가 상관에게 들켜 혼쭐나는 사원.
채팅하며 간이화장을 하는 여직원.
식곤증으로 눈꺼풀이 살살 감기는 성호,
그의 의자를 부장님이 툭! 치고서 헛기침을 내뱉으며 지나간다.
성호는 정신을 차리고 일에 몰두하는 자세를 취한다.

 

 

#5 명동 번화가 (오후)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사방에서 들린다.
반짝이는 화려한 장식품들
행복한 표정으로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사이로
묵묵히 걷는 성호,
날씬한 다리와 히프가 매력적인 여자들을 간간히
흘끔흘끔 쳐다본다.
핸드폰이 울리고 핸드폰을 꺼내서 통화를 한다.

 

이성호:
“네, 부장님. 투자자들과 미팅은 아...주... 잘 됐습니다.
다음 주에 계약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잠시 침묵)
아뇨. 확실히 하겠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만... (잠시 침묵)
그리고 일전에 말씀드린대로 친목 모임이 있어서 바로 퇴근을...
(성호는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했다가 몇 초 후
다시 귀에 댄다) 네? 아! 부장님도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성호는 핸드폰을 넣고 주변의 카페 같은 곳을 두리번거린다.

 


#6 명동 번화가, 카페 (저녁)
1층의 커다란 창밖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는 거리가 보인다.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젊은이들로 북적거린다.
성호는 카페 테이블에 홀로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는 녹차를 손으로 들었다 놨다 하며 거리를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가방을 뒤적이더니,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낸다.

 

거리의 사람들을 클로즈업해서 바라보는 카메라 렌즈의 시점은
홀로 걷는, 또는 나란히 걷는 늘씬하고 섹시한 여자들만을 열심히 쫓는다.

 

이성호(독백):
“(어떤 여자를 포착하고) 몸매는 좋은데, 얼굴이 별로네,
(다른 여자를 포착하고) 너무 말랐어. 영양실조? 거식증?
뼈다구가 따로 없군. (다른 여자를 포착하고) 어! 뒷모습 죽인다.
으잉? 역시 앞모습은 보지 말걸. (다른 여자를 포착하고)
다 좋은데 걸음걸이가 좋지 않네. 분명히 신경질적인 성격일거야.
(다른 여자를 포착하고) 햐아! 아깝다. 저렇게 괜찮은 애를...
정말 남자친구는 별볼일 없구만. (다른 여자를 포착하고)
그래. 저 여자야. 몸매 좋고. 로맨틱 영화에 나올 법한 귀엽고
날씬하면서도 가슴 빵빵하고, 엉덩이 탱탱하고, 환한 미소,
패션 감각도 멋지고.“

 

폴라로이드 찍는 소리:
“찰칵!”, “찰칵!”, “찰칵!”

 

성호는 폴라로이드에서 나온 사진이 잘 마르도록 흔든다.
사진을 살펴보고는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테이블에는 이미 이곳에서 찍은 여자 사진이 5장 놓여져 있다.
총 6장의 여자 사진을 살펴보면서 곰곰이 고민한다.
고심 끝에 1장을 집어서 가까이 꼼꼼히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진 속의 여자가 클로즈업된다.
그 사진 하단에 유성펜으로 글자를 쓴다.

 

‘박유미’

 

성호는 지갑을 꺼내서 그 사진을 지갑 안에 넣는다.
나머지 사진들은 대충 포갠다

아침에 주머니에 넣었던 폴라로이드 사진도 같이 합친다.

성호는 담배를 문다. 지포라이터를 켠다. 담배에 불을 붙인다.
지포라이터 불을 포개진 사진들에 다가간다.
트레이 위에서 사진들이 활활 타오른다.

 

여종업원이 다급하게 성호에게 다가온다.

 

여종업원1:
“(다소 격앙된 톤으로) 손님! 카페 안에서 그런 거 태우시면 안돼요!
그리고 여긴 금연이거든요.”

 

성호는 듣는 둥 마는 둥 사진들이 다 탈 때까지 쳐다본다.

 

여종업원:
“(화가 치밀지만 애써 억누르며) 손님!...”

 

까만 재로 변한 사진들에 훅! 하고 입김을 부는 성호,
여종업원을 올려다보고, 활짝 웃는 표정을 지어준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않은 인공적인 미소이다.
마치 조커가 웃는 미소 같다.
여종업원이 어의가 없다는 듯이 재수가 없다는 듯이
쌩하니 돌아서 그냥 가버린다.
성호는 시계를 보고 자신의 짐을 챙기며 일어선다.

 


#7 고급 분위기의 활어회집 (저녁)
케이크의 촛불이 꺼진다.
여러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울려퍼진다.
테이블 가운데에 케이크가 놓여 있다.
그 주위로 생선회와 술과 여러 밑반찬들이 놓여 있다.
남녀 커플 네 쌍이 둘러 앉아 있다.
성호만 외로이 홀로 앉아 있다.

 

친구1:
(성호에게 술을 권하며) “이제 성호 너만 결혼하면 되네.
내년에는 다섯 커플이 해외로 나가서 크리스마스 보내자. 어때?“

 

친구2:
“아니! 우리 나라에도 좋은 데 많은데 굳이...”

 

친구3:
“난 찬성! (자신의 부인을 향해) 어느 나라 가고 싶어?”

 

친구3의 부인:
“음... 아무래도 따뜻한 나라가 좋겠지...”

 

친구3:
“아니, 자기 말고 우리 애기한테 물은 건대(자기 부인의
불룩한 배에 귀를 갖다대고 응답을 들으려한다).”

 

친구3의 부인이 친구3의 양쪽 귀를 잡아 양쪽으로 당긴다.
모두 킥킥 거리며 웃는다.
성호도 피식! 웃고는 술잔을 비운다.

 

친구2:
(성호에게 술을 따라주며) “전에 너한테 소개시켜줬던 여자후배있지?
걔는 잊어라. 며칠 전에 연락해봤는데, 예전 남자친구 다시 만나서
아주 잘 지내고 있대.“

 

이성호:
“그...그래? 잘됐네. 아참! 내가 말 안했던가. 나 사귀는 여자 생겼어.
아직 이런 자리에 데려올 정도는 아니라서 오늘은 혼자 왔지.”

 

친구2가 웃으며 성호에게 건배를 권한다. 친구2는 조금 홀짝이고
성호는 원샷으로 깨끗이 비우고 핸드폰을 살펴보는 척 하더니.

 

이성호:
“(친구2에게) 나 먼저 가 봐야겠다. 선약이 있거든. (친구들과 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자신들의 얘기에 몰입해서 성호가 가는지도 모르는 친구들과 부인들을
등뒤에 남기고 빠져나오는 성호의 어깨는 쳐져있고
지갑을 꺼내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빼내서 쳐다본다.
여자 얼굴이고 그가 적은 ‘박유미’ 글자도 보인다.
(몽롱하고 싸이키델릭한 느낌의 배경음과 함께 FO)

 


#8 대형 쇼핑마트 (실내)
(몽롱하고 싸이키델릭한 느낌의 배경음과 함께 FI)
움직이는 쇼핑카트 속에 여자가 요염하고 섹시하게 앉아 있다.
그녀는 폴라로이드 사진 속의 박유미이다.
그 쇼핑카트를 성호가 끌고 다니며 먹거리를 선택한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또는 티격태격 먹거리를 고른다.
심야라서 손님들이 많지는 않지만, 두 사람 곁을 지나치던
손님과 종업원은 일관되게 두 사람을 이상한 시선으로
또는 실소를 머금으며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러나 두 사람은 별로 개의치 않고 쇼핑에 몰두한다.
성호는 와인을 집고, 박유미는 소주를 집고,
두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계산대 쪽으로 향한다.

 


#9 성호 아파트 거실 (한밤)
이성호, 박유미:
“(동시에) 메리 크리스마스!”

 

“챙!” 성호와 박유미가 와인잔을 부딪친다.
각자의 잔을 홀짝인다. 식탁위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분위기 있는 조명이 연하게 깔려 있다.
거실 창가에는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있고 전구가 깜빡인다.
테이블에는 조촐한 음식들과 와인과 소주가 놓여 있다.
박유미가 성호와 자신의 와인잔에 와인과 소주를 섞어 따른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분위기 같은 음악이 흐른다.
(디졸브 아웃)

 


#10 성호 아파트 침실 (한밤)
(디졸브 인)
야릇한 실내등이 켜져 있다. 분위기 있는 음악이 계속 이어진다.
성호와 박유미는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춘다.
CD데크에서 다른 경쾌한 음악으로 여러 번 바뀌는데
그때마다 음악에 맞춰서 즉흥적으로
성호가 어설프게 박유미를 리드해서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을 제3자가 봤더라면 매우 웃었을 것이다.
성호가 박유미에게 입술을 들이대면서... (디졸브 아웃)

 

 

#11 성호 아파트 침실 침대 위 (이어서)
(디졸브 인) 침대가 진동한다.
침대 위에 박유미가 천장을 보며 알몸으로 누워 있고,
그녀의 풀어헤쳐진 긴 머리카락, 가냘픈 팔뚝,
부풀어 오른 가슴, 각선미가 눈부신 허리와 엉덩이,
탱탱한 허벅지, 늘씬한 종아리, 귀여운 발.
그렇게 둘러보는 욕망과 허무가 뒤섞인 시선은
성호의 두 눈에서 나오고 것이었고
알몸의 그는 박유미 위에서 열심히 애써 만들어 열정을 불태우는 듯이
피스톤 운동을 한다.

 

창밖으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야경이 아름답다.
투명한 창문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두 사람의 신음소리가 빨라지고 가파르게 상승하다가...
마침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밤하늘의 별똥별이 길게 꼬리를 드리우며 내려간다.
창문의 몇몇 물방울이 합쳐져서 길다란 물줄기를 그리며 내려간다.
CD데크가 CD교체를 하다가 고장 나서 듣기 싫은 씹히는 소음이 난다.

 


#12 성호 아파트 거실 (아침)
맑은 햇살이 거실에 두루 내리쬔다.
밖은 눈이 싸여 조용하고 가끔 새들이 지저귄다.
세면을 끝낸 성호는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펼친다.
해외주가, 해외선물, 암호화폐 지수 등을 빠르게 훑어본다.
씁쓸한 표정으로 혀를 차면서 허탈해하며 노트북을 꽝! 닫고 한숨을 내쉰다.

잠시 후, 성호는 세미정장 차림으로 서류가방을 어깨에 메고 구두를 싣는다.
구두를 신다 말고 뭔가 잊은 게 떠오른 듯 다시 침실로 향한다.

 


#13 성호 아파트 침실 (아침)
성호는 마치 아무도 없는 방문을 여는 것처럼 터억! 침실 방문을 연다.
침대에서 얇은 이불을 덮는 둥 마는 둥 걸치고 잠자고 있는 박유미,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는 박유미를 성호는 무덤덤하게 돌린다.
박유미의 얼굴과 알몸이 딱딱하게 돌아 천장을 향해 눕는다.

 

그런데 박유미의 얼굴에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어 있다.
성호가 명동 번화가에서 찍은 박유미 사진이 선명하다.

 

성호는 사진을 얼굴에서 떼어낸다. 그 순간 박유미는 사람이 아니라
러브돌(Lovedoll)이었다는 것이 명백히 확인된다.
박유미 사진과 러브돌 얼굴이 겹쳐지면서 (디졸브 아웃, FO)

 


#13 강남, 큰 유리 외벽으로 거리가 잘 보이는 1층 카페 (초저녁)
테이블에 홀로 앉아 커피를 들이킨 성호,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서 바라보다가
담배를 물고 지포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인다.
그리고 사진에 불을 붙여서 트레이에 내려놓는다.

 

이성호:
“(다정하게) 어젯밤 좋았지? 나도 좋았어.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어딘가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안녕...”

 

타들어가는 박유미 사진...
마침내 ‘박유미’라는 글자까지 전부 검은 재가 된다.

 

여종업원2가 총총히 성호의 테이블에 다가온다.

 

여종업원2
(애써 차분하게) “손님. 여기서 이런 것을 태우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저희 가게는 금연입니다!”

 

성호는 무뚝뚝하게 가만히 있는데...
여종업원2가 냅킨에 물을 묻혀 트레이의 검은 재를 닦아서
불씨는 완전히 제거한다. 그러는 여종업원2의 하얀 손, 가느다란 팔,
미끈한 몸매, 감각 있게 어울리는 의상, 액세서리, 달콤한 여자 향수 냄새,
오똑한 코, 도툼한 입술, 맑은 샘물 같은 눈동자... 등을
성호의 시선이 따라가며 훑어본다. 순간 성호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이성호:
(황급히 여종업원2의 물티슈를 빼앗으며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어이구! 죄송합니다. 제가 닦을게요.

 

여종업원2는 무덤덤하게 다른 빈 테이블로 옮겨가서 정리정돈한다.
성호는 서류가방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낸다.
카페의 인테리어와 소품에 감탄한 듯 행동하면서 카메라를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방금 전 여종업원2의 얼굴을 쫓는다.
얼굴이 잘 나오도록 사진을 찍더니 하단에 글자를 끄적인다.

 


#14 강남, 번화한 거리 (이어서)
카페에서 나와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성호,
카메라의 시선은 점점 멀어지는데,
성호의 핸드폰이 울리고 통화를 한다.

 

친구1:
“(통화음) 너 어제 왜 말도 안하고 그냥 갔어? 잘 들어갔지?
그리고 만나는 여자 있다며? 같이 오지 그랬어.
우리 친구들 다같이 단체로 해외여행 갈 때는 볼 수 있겠지?
제수씨도 꼭 함께 가자. 알았지?”

 

성호:
“(덤덤한 목소리로) 얘가 낯을 좀 가려서... 한번 물어는 볼게.”

 

성호는 군중 속으로 깨알 같이 보이더니 사라지고 여러 건물들의
네온샤인은 하나 둘 씩 켜지면서 판타지적인 도시 야경을 불태운다.

 

 

 

 

2002~4년 어느 날 초고
2020 2월 23일 (2고)
김곧글(Kim Godgul)

 

 

PS1: 2002~2004년 쯤에 단편영화를 생각하고 적었던 글. 최근에 수정한 내용은 전체의 10% 정도이고 그 뼈대 이야기 자체는 예전과 동일하다.

 

PS2: 앞의 단편에도 적었지만 이글은 픽션이므로 필자 또는 어떤 실재 인물과 전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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