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Gogh)의 병원 그림이고 아래 글과는 무관함

 

 

사이버 여배우의 누드 사진집

 

 

 

쾌적하고 안락한 느낌을 풍기지만 어딘지 모르게 인공적인, 화학약품 냄새를 내뿜는 현대식 병원이었다. 창밖으로 초록의 녹지를 따라 터벅터벅 걷는 환자들, 보조하는 간호사들, 부드럽게 굴러가는 전기 휠체어, 묵묵히 걸으며 담배연기를 내뿜는 의사들, 어느 쪽에선가 들리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 주차장 안내원의 마이크 소리.

 


나는 창문을 닫았다. 그러나 방금 잠들은 12살 딸내미의 얼굴을 보자마자 창밖을 내다보기 전의 침울한 느낌으로 되돌아왔다. 또한 그건 옆에서 조용히 안쓰럽게 환자용 침대 주변을 정리하는, 지금은 딴 남자의 아내가 된 전처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전처와 나는 개인적인 가치관과 인생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 하고 몇 년 전에 이혼을 했는데, 우리는 별 무리 없이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아무 문제는 없었다. 나도 곧 있으면 1년 전부터 사귀고 있는 새 여자와 결혼을 할 계획에 있었다. 전처와 나는 서로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을 했기 때문에, 둘 사이에 태어난 너무도 사랑스러운 딸 문제로 가끔 만날 때도 전혀 껄끄럽거나 부담스런 감정은 표출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행복을 찾았고, 나도 나 나름대로 행복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딸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고 딸이 이곳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게 전적으로 전처와 내가 이혼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어떤 충격이 인간의 잠재의식에 잠복해 있다가 어느 순간 다른 쪽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고 하던데,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인지할 수 있는 원인을 얘기하는 것이다.

 


전처와 나는 이혼을 하고, 내가 딸을 맡기로 합의를 봤다. 전처가 새 남자와 결혼생활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의향을 제시했기 때문도 아니고, 내가 직장에 갔을 때 딸을 맡아 줄 부모님이 아직 정정하셨기 때문도 아니다. 나는 딸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애의 엄마가 나를 떠날지라도 딸까지 떠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여러 가지 면에서 딸을 양육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나는 확실한 직업도 있고 넘칠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부족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는 예금액도 넉넉했다. 딸도 엄마보다 나를 더 좋아했다. 딸도 가끔 엄마를 만나러 갈 수도 있었고, 전처도 새 남편도 나름대로 잘 대해줬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나와 딸과 전처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나는 딸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작업실을 집으로 옮겼다. 나는 의류업체나 패션잡지사의 화보 촬영을 전문적으로 하는 프리랜서 사진작가였기 때문에 작업실 즉 촬영 스튜디오를 2층 집의 1층을 개조해서 만들어서 일해도 괜찮았다. 2층에는 순전히 나와 딸만의 오붓한 가정집이었다.

 


나는 딸에게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보다는 책을 가까이 하게끔 신경을 많이 썼다. 하루의 일정한 시간만을 허용했다. 그러나 나의 정책이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딸은 원래부터 그런 것에 흥미가 없는 듯했다. 책을 읽거나 가끔 나의 작업실에 들어와 내가 촬영했던 사진들을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여긴 어디야?”, “이 사람은 누구야?” 따위의 호기심을 쏟아낼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딸과 나는 더욱 친해지게 되었지만, 딸은 한 번도 지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없었다. 아마도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친구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때마침 나는 실력을 업계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놓은 상태였고, 최근에는 하고 싶은 일감을 골라서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아무래도 딸과 나의 미래를 위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감을 우선적으로 선택했지만, 내가 집을 오래 비워야 하는, 예를 들면 해외 체류기간이 일주일이상 걸리는 긴 촬영은 단오하게 거부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패션잡지나 광고사진을 더욱 많이 촬영하게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연예인, 셀럽 등을 잘 찍는다는 입소문이 퍼져 일거리가 끊기는 일이 없었다.

 


물론, 여배우나 여가수라면 일을 떠나서 순전히 개인적인 추억 보관용으로 관례가 된 누드사진을 촬영해주길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나는 프로패셔널한 감각을 살려 누드사진을 멋지게 찍어줬다. 내 카메라와 내 현상소를 거쳐간 유명 톱스타 연예인도 이젠 헤아릴 수조차 버거울 정도로 많아졌다. 당연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직은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어린 딸에게 행여나 왜곡된 선입견을 줄 수도 있기에 누드사진촬영만큼은 딸의 출입을 금지하고 나 혼자 작업했으며 그 사진자료들도 나만의 비밀서랍에 보관해서 딸이 볼 수 없도록 조치했다.

 


그러던 중에 조금은 이상하기도 하고 재밌는 촬영제의가 들어왔다. 그것은 사이버 배우의 누드 촬영이었다. 사이버 배우라고는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상물에서의 사이버 배우는 그저 힘겹게 인간을 흉내내는 마리오네트 인형 같은 존재였다. 어딘지 모르게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서 쉽게 이질감이 들었다. 그런데 컴퓨터의 급속한 발전 속도의 영향으로 최근의 사이버 배우는 놀라울 정도로 기존과 달랐다. 실제 인간 배우와 거의 같은 생김새와 질감, 너무도 자연스러운 표정연기와 움직임, 전문 성우들의 멋진 대사, 요즘 어린애들에게는 사이버 배우가 더 인기라고 하는 뉴스도 가짜뉴스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활약으로 철저하게 어린 대중의 구미와 입맛에 맞게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외모와 동작을 자연스러울 정도로 거의 실제 인간과 똑같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들어온 작업 의뢰는 사이버 배우로서는 최근에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여배우였고, 최근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의 앙케이트 조사에서 중고생이 가장 데이트하고 싶은 여배우 1위에 뽑힌 적도 있다고 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개, 남자 중고생의 경우에는 그녀와 같이 너무도 섹시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심리였을 테고, 여학생에게는 그녀와 같은 섹시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고 어떤 문화평론가는 논평했다.

 


어쨌거나 그런 건 나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은 없다.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업무진행에 집중했다.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여배우가 아니므로 그녀를 촬영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했다. 사이버 여배우의 기획사에서 내게 의뢰한 것은 엄밀히 따지만 나만의 촬영노하우과 전문적인 예술 플러스 커머셜 감각이었다. 그렇다고 전혀 촬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엄밀히 따지면 디지털 세계의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편이상 그녀라고 부른다)의 배경에 쓰일 특별한 장소를 촬영하는 것은 내가 작업해야할 일이었다. 실제 여배우라면 옷을 홀딱 벗어야 하는 특성상 장소의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는데 반하여 그녀의 경우에는 전혀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기획사에서는 그런 차별적인 특성이 십분 발휘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눈 내리는 설원에서 열대 바다 속으로, 황량한 남극에서 광활한 모하비 사막으로,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뉴욕과 파리의 도심지를 쏴돌아다니며 인상적인 배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치 사이버 여배우가 그 장소에서 누드 촬영을 위해 매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 상상하며 수없이 다양하고 많은 배경을 촬영한 것이다.

 


해외에서 일련의 작업 중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 내 딸은 조부모님께 맡겼는데, 딸은 나를 애타게 그리워했다고 한다. 출가외인인 엄마(나에겐 전처)를 몇 번 만날 뿐 친구와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고 시무룩하게 홀로 지낼 때가 많다고 했다. 더구나 전처는 새 남편 사이에 건강한 새 아이를 출산했다고 했다.

 


거의 한 달 동안 집을 떠나 마침내 귀가 했을 때, 딸은 너무도 기뻐하면서 나에게 매달렸다. 나도 한없이 기뻤다. 내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모두 다 사랑스러운 딸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해야할 업무가 산적하게 남아 있었다. 해외에서 촬영해 온 수많은 배경사진과 사이버 여배우의 누드 이미지를 세심하고 정교하게 연출해서 최종 스틸 사진과 동영상을 만들어 내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한두 장이 아니었다. 사진화보집을 출간한다고 해서 넉넉잡아 500장 이상을 만들어내야 했다. 당연히 사이버 여배우의 CG 작업은 전문가들이 하겠지만 실제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어쩌면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이버 여배우의 표정연기와 포즈는 물론이고, 배경과 잘 어울리는 인물조명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내 책임이었다. 일일이 내가 그래픽 전문가에게 전문적인 감각과 노하우를 발휘하여 판단한 것은 요청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집을 또 다시 떠나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국내에 머물고 있지만, 일시적으로 딸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작업에 대한 예술적인 욕심을 떠나서 하루 빨리 제대로 끝내려면 아애 한 달 정도 숙식을 하면서 몰입해서 작업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알아서 잘 돌보시거나, 딸은 혼자서 책을 읽거나 할 것이다.

 


지루하고 고된 창작 작업이 드디어 끝났다. 기획사에서도 꽤 만족을 표시했다. 그들은 곧바로 사진집과 디지털 콘텐츠로 개발해서 다양한 홍보전략을 활용하여 대중들에게 쏟아 부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의뢰인이 만족할 작품으로 만들어 주었고 돈도 두둑이 벌었으므로 좀 쉬고 싶었다. 딸과 함께 좋은 휴양지로 여행이나 떠나고 싶었다.

 


불과 두 달하고 보름정도의 기간이 지났을 뿐인데, 어린 딸에게는 꽤 길다고 느껴졌던 것인지 나에게 화가 나 있었다. 나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서 딸의 마음을 달랬다. 어쩌면 전처와 연애를 할 때도 이렇게 고심하면서 애타게 달랬던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딸은 순수한 어린아이였고 그렇게 모질거나 독한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이내 풀렸다. 그리고 같이 태평양의 어떤 섬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부득이한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딸과의 여행을 몇 주 미루게 되었다. 사이버 여배우의 누드 사진이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중고등하교 학생들에게 더욱 폭발적이었다. 늘 그렇듯이 시대를 불문하고 여성의 아름답거나 매혹적인 몸매는 매중매체의 핫한 단골 식단이었다.

 


더불어 이를 문제 삼고 지적질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건수였다. 그렇지 않아도 여성의 몸매나 육체를 상품화 하는 것을 문제 삼는 사회단체에서 이젠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치관도 정립되지도 않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들이 문제 삼는 것은 사이버 여배우의 섹시한 몸매와 더불어 그녀의 몸매가 현실 세계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지닐 수 없는 비정상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한국인의 평균 체형에 비하여 가슴과 엉덩이는 지나치게 크면서 허리는 개미허리만큼 가늘다는 것이 그들이 지적하는 내용의 핵심이었다.

 


그 사이버 여배우에 열광하는 팬들은 누드집이 나오자마자 그녀처럼 몸매를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돈이 엄청 많은 부유층 자제들은 유명한 성형외과를 은밀히 들락거렸고, 대다수 평범한 생활수준의 여고생들은 그녀의 몸매와 같게 만들려고 온갖 다이어트와 운동을 감행했다. 운동을 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무리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다이어트까지 열정적으로 했기 때문에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빈혈 같은 것으로 기절해서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그녀처럼 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여중생도 있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그녀와 똑같을 정도의 몸매를 가진 여자를 찾아 거의 여왕으로 추켜세우는 열풍도 몰아쳤다.

 


사회적 파장이 이렇게 커질 줄은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저 단순한 컴퓨터 그래픽일 뿐이고, CG로 범벅이 된 동영상일 뿐인데.... 아무튼 그런 좋지 않은 파장이 사회적으로 널리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나는 여기저기 매스컴에 불리어 나갔다. 나는 전혀 참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기획사에서는 암암리에 어느 정도 예측을 한 일인지 몰라도, 나에게 작업 의뢰할 때 이런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참석하지 않을 수 없도록 계약서에 보일 듯 말 듯 써놓았었다. 그것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고 싸인을 했던 나의 큰 실수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많은 방송국의 공개토론회에 참석해야 했고 내키지 않는 인터뷰도 부득이하게 응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의 인지도가 치솟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긴 했다. 최고의 차세대 사진작가라느니 신종 직업의 선구자라느니, 그렇게 되는 바람에 또 다시 집을 자주 비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중국과 일본과 아시아 여러 국가에 까지 방문해서 인터뷰와 방송출연을 했다. 이미 급속하게 그쪽 청소년들에게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의 역할을 마무리하고 이젠 좀 쉬어야겠다고 집에 돌아온 것은 내 딸과 태평양의 어떤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로부터 정확히 30일이 또다시 흐르고 난 후였다. 다행히도 그동안 딸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잘 돌봐 주셨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 사이 학교 친구들도 사귀어 이젠 제법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집과 거래처를 오가며 작업을 해나갔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다. 확실히 문제가 터진 것은 그 전부터 였지만, 내가 알게 된 것은 그 시점이었다. 내가 일에 쫓겨서 딸에게 관심과 애정을 못 주고 있었을 때 이미 내 딸도 다른 여중생들처럼 사이버 여배우 몸매 만들기 놀이에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 빵빵하게 키우기, 탱탱한 엉덩이 만들기, 개미 허리 만들기, 작은 얼굴 만들기... 심지어 또래들 사이에서는 그런 무리한 다이어트에 몰두하다가 실신해서 쓰러지는 것을 마치 훈장이나 달은 것처럼 자랑으로 여긴다고 했다.

 


어느 날 나는 내 작업실의 비밀서랍에서 내 작품을 모아둔 여배우들의 누드 사진 중에 마지막에 작업했던 사이버 여배우의 사진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딸이 빼내갔다는 것을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추궁하자, 딸은 친구들에게 자랑하려고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일에 지쳐서 그랬던지 몰라도 딸을 심하게 야단쳤다. 딸은 눈물을 흘리며 반성했다. 그러나 그 반성은 단지 아버지의 업무 작업물을 몰래 가져갔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었을 뿐, 사이버 여배우 따라하기 열풍에 빠져든 것에서 헤어나오겠다는 반성은 아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내 딸은 학교에서 체육 수업 중에 실신을 해서 이곳 병원으로 실려 왔던 것이다. 학교 담임선생은 한 달 사이에 98번째로 실신한 학생이라고 얘기해줬다.

 


나와 전처는 환자용 침대에서 수술을 기다리며 자고 있는 딸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도 전처에게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고, 전처도 나에게 속마음을 꺼내놓지 않았다. 전처보다 당연히 나에게 잘못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되지만, 전적으로 나만의 잘못도 아닐 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며 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병실의 창밖 풍경은 좀 전과 다르지 않았다. 나와 전처와 내 딸과는 전혀 상관없이 한없이 평화롭기만 했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주차 안내원의 안내방송 멘트의 톤이 일시적으로 올라갔다는 점과,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응급실 출입문에 구급차가 달려와 정차하더니 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는 점이다. 얼핏 보이는 환자는 의식이 없어 보였고 여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2002~5년 어느 날 초고
2020 2월 17일 (2고)

 

 

P.S.: 이것은 필자가 2002~5년 쯤에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적인 내용의 단편소설일 뿐이니 현실과 착오 없기를 바랍니다. 인물들과 필자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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