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시의 내용은 무관 (인터넷 검색으로 올렸을 뿐)

 

 

밥알

 

 

 

삐~삐~, 전기밥통이 작업을 끝냈다고, 이젠 느슨히 보온만 하겠단다. 그 소리를 정확히 언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 딴에는 좀 무거운 단어들로 채워진 신문의 칼럼을 힘겹게 끝까지 읽는다.

 


밥공기와 플라스틱 주걱을 집어 전기밥통에게 다가간다. 첫잔의 맥주에서 느낄 수 있는 달콤함 같은 새하얀 드라이아이스처럼 뿜어져 나오는 김. “성인병에 안 걸리려면 잡곡밥을 먹어야 된대요.” 라는 내 제안에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어머니의 미간에 주름살이 짙어진다. “돈 내놔. 당장 사다 줄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새하얀 쌀밥이다. 어르신들이 젊었을 때는 흰쌀밥을 먹는 게 큰 기쁨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야지.

 


주걱에 찰싹 달라붙은 몇 개의 밥알, 미안해, 싱크대 수돗물에 씻겨 보낸다. 플라스틱 주걱을 밥통 안에 두면 건강에 해로워, 그렇다고 밖에 그냥두면 딱딱해진 밥알이 돌멩이 버금가게 변신하여 누군가의 이맛살을 찌푸려놓을 터, 그래서 주걱을 깨끗이 씻어 놓는다.

 


새록새록 고등학교 국어시험 문제로 출제된 기억이 나는,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낡아빠진 글귀, ‘시장이 반찬이다’, 밥공기에 참기름을 살짝 붓고, 기름에 볶은 참깨를 조금 뿌리고, 한 숟가락 떠서 한 입에 넣는다. 그리고 밥공기에 비해 크기는 같지만 밑 부분이 살짝 좁혀진 공기에 담긴 시뻘건 김치를 집어 “와그작!” 씹으면, 아! 바로 이 맛이야! 밥도둑이 따로 없구나.

 


다시 플라스틱 주걱을 동행해 전기밥통에 가서 새하얀 탄수화물을, 침과 함께 녹아버린 밥알 자국이 새겨진 밥공기에 담는다. 그리고 플라스틱 주걱을 한 번 더 샤워시키는데...

 


좀 전에 주걱을 씻긴 물이 아직도 완전히 배수구를 빠져나가지 못 한다. 물에 불고불은 밥알들이 배수구를 막아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어쩌면 제 삶의 목적을 제대로 이뤄보지도 못하고 명을 다하는 게 서러워, 밥알들이 단체로 항의하는 것일지도...

 

 

그랬구나, 미안. 결코 너희들을 보리, 현미, 흑미, 좁쌀, 콩보다 덜 사랑해서 그런 건 아니란다. 무심코 저지른 일, 다음부턴 꼭 너희 삶의 목적과 소망대로, 입속으로 들어가 삼켜지도록 해줄게.

 

 

 

 

2002~4년 어느 날 (1고)
2020년 2월 5일 (2고)
김곧글(Kim Godgul)

 

 

 

PS: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옥탑방에서 잠시 살았었는데 그때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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