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Metropolis (1927)' (그냥 사진을 첨부한 것이고 본 단편과는 무관함)

 

 

고층빌딩에 담배 피는 고양이

 

 

 

“고층빌딩에 담배 피는 고양이 같은 놈아!” 라는 말을 21xx년 초거대 도시 '서울'에서 절대로 말하지 말기를 바란다. ('서울일상용어대사전 21xx년 판'에서 인용)

 


내가 한참 어렸을 때, 그러니까 하늘을 나는 공중셔틀버스가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시절에, 나는 자주 그걸 타고 등교하곤 했다. 원래 최단등교시간을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야 했지만, 웅장하고 화려한 고층빌딩과 다양한 피부색의 뭇사람들과 각양각색의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마치 진정으로 제2의 피카소라는 평가를 받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동남아시아 어떤 섬마을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며 활동 중인 화가 ‘환상손’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도시풍경을 내려다보는 재미 때문에 17분이나 더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공중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차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는 즐거움, 한가로움, 빈둥거림, 멍때림, 그런 것에 익숙했던 나는 언젠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가 호기심으로 주변을 살펴봤는데, 글쎄..., 대부분은 그다지 나처럼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최첨단 기계 장치와 자신의 신체의 어떤 부분을 연결하여 물아일체의 경지로 가상세계에 빠져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 보였다. 아무튼 나는 내 방식이 좋았다. 지하철을 타면 저렴한 교통비에 빠르고 정확한 도착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창밖으로 보이는 화려하게 지천으로 늘어선 마천루 사이로 실제와 구분할 수 없는 크고 작은 홀로그래픽 형상들이 예술과 상업성을 영리하게 넘나들며 움직이는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 어떤 곳에서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창문을 조금 열면 홀로그래픽에서 내뿜는 것 같은 향기가 코끝을 달달하게 매혹시키기도 했다. 그렇다고 창문을 계속 열어놓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입을 찢어져라 하품을 할 때면 썩은 고기 냄새가 고약하게 진동하니까 말이다. 아마도 이것은 구강청정제 또는 명품 치약 광고를 위한 것이었으리라.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화려한 풍경에 다소 식상해진 이후에 내가 즐겨 했던 행동은 고층빌딩의 사무실 내부를 살펴보는 거였다. 부서와 부서를 바쁘게 넘나드는 사람들, 텀블러의 커피를 홀짝이며 여러 대의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파묻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사람, 말쑥하게 차려입은 해외 바이어인 듯한 귀빈과 비즈니스 협상을 잘 타진하려고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화장실과 복도 청소를 마치고, 산소를 과하게 내뿜는 인공나무가 심어진 화분이 중앙에 있는 원탁에 빙 둘러앉아 옛날식 커피를 홀짝이며 잡담하는 미화원들, 이처럼 대개는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특별할 건 없는 흔하디흔한 사무실 풍경이지만, 아주 가끔 우연히 흥미로운 장면이 포착되곤 한다. 마치 ‘가상낚시방’에서 소형작살에 적절한 유효 궤도를 잘 지정해주고 가상호수에 던져주면 지가 알아서 사방팔방 유영하다가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황금잉어를 낚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 맛이다. 물론 지금은 서울의 가상낚시방보다는 가까운 교외의 저수지나 강을 찾고 있지만, 한때는 황금잉어를 잡았을 경우의 배당금에 눈이 멀어 친구 따라 한 번 해봤다가 몇 달 동안 빠져 살았던 안 좋은 기억이 있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냐 했냐면 새벽에 갈증이 일어 눈을 떴는데 어두침침한 방안을 황금잉어가 천천히 유영하고 있는 환상이 보였고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곤히 잠자는 아내까지 깨우는 바람에 그 신종 사행성 게임에 빠진 것을 아내에게 실토할 수밖에 없었고, 이혼하자는 아내의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가상낚시방 출입을 끊었던 어두운 흑역사가 있다.

 


아무튼, 학창시절 공중셔틀버스로 통학하면서 드물게 포착되는 내게 가장 흥미로운 광경은, 사람들이 아직 출근하지 않은 사무실이나 복도에서 고양이, 개, 너구리, 비둘기, 앵무새, 까마귀, 독수리, 까치... 같은 다양한 동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인간으로 치자면 마치 오후의 나른함을 떨치고 일의 능률을 높이고자 빙 둘러앉아 다과를 나누는 것처럼,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지만, 인간들이 먹는 다과와 과일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광경은 배를 햇빛을 향해 벌러덩 드러눕고 두 다리를 공중셔틀버스의 승객들에게 자랑이라도 하듯이 쩍 벌린 고양이가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다. 혹자는 고양이가 담배를 피면서 지나가는 공중셔틀버스를 향하여 소변을 갈기는 것도 목격했다고 하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언젠가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대담하게 맨 뒷자리에 벌러덩 누워서 잠자던 학생에게, 웬만하면 잠자는 학생들을 깨우지도 않던 수학선생이 (대개 책상에 엎드려 잠자는 학생들은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로 코를 곯지 않는 이상 그냥 두는데) 그날 따라 일진이 안 좋았는지 , 그 학생의 행동이 너무 황당하고 얼토당토하지 않게 느껴서 엉겁결에 가까운 곳에서 잡힌 물건, 수업 중에 갈증이 날 때 마시던 탄산음료가 담긴 자신의 머그컵을 던지려다가 멈추고, 천천히 학생에게 다가가, 탄산음료만을 시끄럽게 잠자는 학생의 얼굴에 쏟아 부었다. 그 학생의 얼굴은 탄산음료로 흥건히 젖었고, 화들짝 일어나려는 듯이 움찔 거리기는 했지만, 눈은 분명히 떴으면서도 꼼짝하지 않고 계속 누워서 멀뚱멀뚱 눈꺼풀을 개폐할 뿐이었다. 그 순간, 수학선생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져서 그 학생한테 버럭 소리 질렀다. “고층빌딩에 담배 피는 고양이 같은 놈아!”

 


이 말은 선생이 학생한테 내뱉을 수 있는 최고로 멸시적인 비난의 욕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한도 내에서 허용되는 말 중에서 그렇다. 보통 일반인들 끼리도 매우 화가 치밀지 않은 이상 잘 쓰이지 않는 욕이다. 암흑은어나 사투리를 논외로 하고 서울에서 공식적으로 합법적인 모욕어로 인정한 말이라고 최근 발간된 ‘서울일상용어대사전 (21xx년 판)’에 적혀있다. “고층빌딩에 담배 피는 고양이 같은 놈아!”는 얼핏 단어 그대로 뜻풀이 하면 벌거 아니지만, 행여 서울을 처음 여행하는 외국인에게 최초로 이 말을 가르쳐 주고 그 뜻을 영어로 “Thank you very much.”라고 짓궂은 장난을 하는 젊은이를 핑계 댄다고 하더라도, 이 말을 함부로 누군가에게 했다가는, 활짝 미소 지으며 말하더라도, 이 말을 듣는 당사자는 상당한 모멸감을 느낀다.

 


물론 누워 잠자다 혼쭐이 난 학생이 바로 일어나지 못한 이유는 한참 나중에 병원에서 밝혀졌는데, 그 학생은 지금도 부작용도 있고 구식이라 사용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최신식이었던 신체외부에서 간단한 조작으로 외상없이 인간의 뇌에 접속해 음악 또는 뮤직비디오 또는 영화를 꿈꾸게(감상하게) 해주는 플레이어를 연결하고 있었는데, 수학선생의 탄산음료가 그 소형 플레이어와 학생 두뇌가 접속하는 부위에 떨어져 아주 복잡한 화학반응이, 그게 과연 어떤 화학작용인지는 당연히 나 같은 과학 문외한은 모르지만, 일시적으로 학생의 두뇌가 마치 가위라도 눌린 것 마냥 자신의 신체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잽싸게 일어나지 못 했다고 하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덕분에 그 학생은 교권에 모멸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정학처분만을 받고 며칠 후 다시 등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내에 널리 퍼진 일반적인 소문으로는, 사실, 학교 측에서는 교칙에 준수하여 그 학생의 괘씸한 행동의 징계로 최소 1년 이상 정학시킬 계획이었는데, 그 학생과 부모가 영리하게도 수학선생이 학생에게 내뱉은 모욕적인 말 “고층빌딩에 담배 피는 고양이 같은 놈아!”를 학생의 기억에서 축출하여 디지털 데이터화된 메모리로 만들어서, 학교 교장한테 떡하니 내놓으며, 이 사실을 서울시교육청에 문제 삼을 것이고 서울인권위원회에 제소할 거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상호간에 적절한 선에서 합의를 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출처가 분명치 않은 소문도 있는데 전혀 근거가 없어보이지도 않기에 소개해본다. 학생의 어머니는 수학선생이 자식의 생명을 위협했다며 공공연하게 언론플레이를 해서 학교와 수학선생의 경력과 장래에 치명타를 줘야 속이 시원하겠다며 눈가와 볼의 주름살을 찢으며 위협했지만, 한때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남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기도 했던 교장이 (그는 첨단 의술로 인하여 증손자를 본 동년배들이 십수년 젊은 외모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20대초 얼굴과 신체를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매우 여유롭게 학생의 어머니와 심지어 그녀의 친구들도 포함하여 거하게 크루즈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대기권 밖 우주정거장에서 화려하고 흥겨운 파티도 즐길수 있도록 마련해주었기에 크게 시끄러울 수도 있었던 사건은 극지방의 빙산이 적도로 이동해서 녹아 사라지듯이 완전히 일단락이 되고 없었던 일로 되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학생의 아버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부인(즉, 학생의 어머니)에게 매우 불편한 감정을 품고 보란 듯이 대놓고 (또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결혼 후 처음으로 ‘음성적인 소문으로만 듣던’ 무의식과 의식이 통째로 접속되는 가상공간에 들어가서 세기의 AI(인공지능) 미녀 톱모델과 달달한 저녁식사를 하고 1박에 몇 달치 월급과 맞먹는 안드로메다 호텔에 투숙해서 두 사람(엄밀히 따지면 두 인간은 아니지만 아무튼)의 몸을 진하고 질퍽하고 화끈하고 강렬하게 섞었다가 (나중에 아내에게 들통나는 것은 남편의 바람이기도 했다) 이혼소송을 당하는 지경까지 갔고, 몇 주 후 이혼재판 중에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영상카메라 앞에서 부인이 남편의 면상에 대고 “고층빌딩에 담배 피는 고양이 같은 놈아!”라고 소리질렀는데도 남편이 묵묵히 참고 가만히 있었기에, 일반인 배심원들은 남편의 인격을 좋게 평가하여 ‘이혼소송 철회’ 항목에 ‘추천’을 많이 선택해줬다. 그 이후의 최종적인 결과는 그 학생이 ‘게이머 군인 기업체(Gamer Soldier Inc. - 게임을 잘하는 아이들이 입사해서 군인으로 활약하는 재벌대기업이며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국가가 상당부분 지분을 갖고 있고 의사결정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에 자원입대해서 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하는 바람에 더 이상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이 소문들이 어느 부분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서울이라는 초거대 도시에서 ‘고층빌딩에 담배 피는 고양이 같은 놈아!’라는 말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모욕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쪼록 21xx년에 서울을 처음으로 또는 오랜만에 방문한 사람은 이것을 필수 에티켓으로 기억해서 누군가와 사소한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손해 볼 건 없을 것이다.

 

 

 

2020년 1월 24일  김곧글(Kim Godgul)

 

 

 

PS. 이 단편은 꽤 오래 전에 적었던 것인데 최근에 약간 수정하고 추가해서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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