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TRAVEL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마음껏
쏴돌아다니고 싶다.



지금은 깨끗이 환골탈태한
내 어린 시절 살았던 칙칙한 동네로 시간여행을 떠나서
골목골목 여기저기 누비고 싶다.
구멍에 골고루 넣는 재미가 쏠쏠한
전봇대 아래 피라미드처럼 쌓아놓은 다 타 버린 연탄재 위에
소변을 쏴대기도 하고.



비가 내리면 흙탕물이 여기저기 고여 부지불식간에 바지에 튕기고
저녁에 엄마한테 나 때문에 방바닥이 흙투성이라고 혼쭐나고.
집 앞 허름한 벽에는 덕지덕지 겹겹이 도배된 3류 극장 포스터 쪼가리들.
누군가 말 로고를 떼어간 포니 승용차가 주차해있고
     ‘정말 그 로고를 당시 몇 천원에 산다는 업자가 실재했을까?
     아니면 단지 아이들끼리 뜬소문이었을까?’
문방구 문밖에 아이들이 쭈그리고 앉아 조립하는 조악한 플라스틱 장난감,
그 주변에는 둥그런 딱지를 뜯어내고 버린 잔해가 허물처럼 바람에 흩날린다.



새벽에 오늘 장사를 위해 식품을 사다놓고
한바탕 점심 손님들의 쇄도가 휘몰아쳤다가 썰물처럼 사라진 한가한 오후에
검지 중지 약지에 식용유를 묻혀 검붉은 원단의 김에 두루 쳐바르고
그 위에 새벽에 내린 싸리눈 같은 가는소금을 수북이 뿌려서
아장거리는 불꽃들의 가스레인지에 석쇠를 올려놓고 구워서 재단으로 완성한 후
     ‘김의 짠 맛은 수북한 소금 때문이었을까? 또는 아버지의 손맛이었을까?’
깊은 낮잠에 빠진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꿈길을 배웅한 후
굵은 파이프로 땜빵한 짐칸이 있는 아버지의 장신 자전거를 몰고 동네 한 바퀴.
정지했을 때 양발이 지면에 닿지 않아서 한쪽으로 기우뚱해야만했고
번잡한 골목이나 도로변을 달릴 땐 위험천만했지만
그럭저럭 큰 변 없이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어린이날 나만의 자전거를 사달라고 생떼를 썼다가
‘한심한 놈’, ‘철없는 녀석’ 말폭탄만 맞고 물 건너갔다.



쇠고기 라면박스 2개 넓이의 밥상에 빼곡히 둘러앉은 우리집 다섯 식구
종종 외할머니까지 오시면 총 여섯 식구
후라이팬에 구운 두부 한 조각에 밥 한 숟가락
간장에 조린 덴뿌라 한 조각에 밥 한 숟가락
짠 싸리눈이 수북한 아버지 표 김조각에 밥 한 숟가락
어쩌다 한 입에 반찬 두 개를 먹으면 맹비난을 쏴대는 형제들,
‘전자인간 337’, ‘황금날개 123’, ‘로보트 태권V’를 보러 극장에 같이 가기도 했었다.



잡종개 ‘누렁이’한테 먹다 남은 찌개 국물에 쉰밥을 말아 주고
고양이 ‘나비’한테 먹다 남은 비린내 쩌는 고등어를 준다.
맛있게 먹고 있는 개를 쓰다듬어주면 좋아하지만
고양이는 우우우웅 갸르르릉 날카로운 경고를 쏴댔지.
‘나비’는 언젠가 아버지한테 혼나고 집을 나가 도둑고양이로 전향했다.
뻥튀기 아저씨한테 의뢰해서 만든 튀밥의 자루에 들어가 오줌을 싼 것을
아버지에게 들킨 바로 그 날.



설날에는 아버지와 큰아버지한테서 받은 몇 천원의 세뱃돈을
전자오락실에서 ‘스크램블’, ‘인베이더’, ‘제비우스’, ‘페인터’, ‘방구차’...
몽땅 다 날리고 남이 하는 거나 쳐다보며 우두커니 구경하고 있을 때
오락실 주인 아저씨가 서비스라며 동전 한 개를 넣어주기도 했다.
물론 호갱 관리차원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을 몰랐던 순수했던 아이,
천사 같은 아저씨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아저씨의 선심은 한국적인 독특한 정(情)의 문화에 속하겠지.’
지금은 컴퓨터로 그 옛날 게임을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그때 그 맛은 결코 되새김할 수 없다.
그저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찰나의 느낌만 주고 사라질 뿐.



몇 해 전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다시 세배드릴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셨고
내가 세뱃돈을 주고있는 조카들은 어느덧 혼기가 차갈 정도로
수많은 세월이 흐른 현재까지도 그 옛날 정취들이 비록 어렴풋하지만

생생하게 연명하고 있다.



밤이 긴 겨울에는 왠지 타임머신을 타고 어렸을 때 살았던 후진 동네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다.



2019년 3월 17일 김곧글(Kim Godgul)



PS. 한국인은 연령층에 따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이 단순한 인터넷 번역으로 이 시를 제대로 음미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주석을 첨부하려 했지만... 너무 많이 필요해서 엄두가 안 난다. 참고로 이 시는 한 달 정도 전에 썼는데, 그 후 몇 번 수정을 거쳐 완성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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