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여왕의 최일선 총애자리를 놓고 두 시녀가 치열한 암투를 벌인다. 겉모습은 그렇지만 ‘요르고스 란티모스(Giorgos Lanthimos)’ 감독이 만든 영화들의 매우 두드러진 특징인 보편적인 인간의 사회성을 껄끄러운 영상으로 은유해서 감상시켜준다.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 (Olivia Colman) 분)’은 사장 또는 팀장이고 ‘아비가일(엠마 스톤 (Emma Stone) 분)’과 ‘사라 여사(레이첼 와이즈 (Rachel Weisz) 분)’은 폭주 승진을 열망하는 사원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판박이로 대응된다. 물론, 대부분의 사원들이 그녀들처럼 노골적으로 생사를 걸고 직장생활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의식중에 짧거나 혹은 긴 기간 동안 두 시녀와 유사한 사회성 게임을 했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가 ‘아차!’ 하는 후회를 동반하며 회상하는 경우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두 번쯤 겪어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꼭 직장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회생활에서 그랬을 수도 있다. 사랑의 연적, 스포츠 선수와 감독, 오케스트라의 단장과 단원, 에베레스트 정상에 깃발을 꽂는 명예로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등반객들,... 생각해보면 부지기수로 많다. (한편, 숭배를 받는 입장의 앤 여왕도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내용적으로 언제든지 주객이 전도될 수는 있고, 그런 시스템의 옥좌에 앉은 지배자라고 하더라도 그 자리는 언제든지 가시방석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이 영화에서는 놓치지 않는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필모그라피가 말해주듯이 이번 영화도 수많은 관객들에게 보편적이거나 편안한 감상을 서비스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일부 관객들은 매우 매혹적으로 감상했을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높은 명성의 감독을 여러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모범생 아니면 문제아’ 출신 스타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런 분류는 수많은 업종의 예술가들에게도 쉽게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통상적이다) 요르고스 감독은 당연히 문제아로 분류되는 명감독일 것이다.



어떤 예술가가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만들어내는 것도 분명히 보편적이지 않고 삐딱하거나 요상하거나 잘 소화되지 않는 껄끄럽다면? 그런데 일부 수많은 관객들이 이 예술가의 작품에 매우 강한 매혹을 느끼며 감상한다면? 작품의 알맹이는 제대로 영양가를 갖춘 앙꼬였던 셈이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적어도 인간의 역사는 이런 예술가와 작품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당장은 어떨지라도 말이다. 모범생 스타일이면서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드는 예술가가 대부분이지만, 몇몇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인원수) 문제아 스타일이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그런 감독이라고 생각된다. 정말이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꾸준히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작품도 꾸준히 기다릴 것이다.



2019년 3월 5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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