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소개하자면, 멕시코의 1970년대 초반의 어떤 중상류층의 가족을 거의 국내 TV프로 ‘인간극장’ 느낌으로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그렇지만 중요한 몇 장면은 절대로 ‘인간극장’에서 보여줄 수 없는 매우 극적이고 극적인 장면이다. 그 몇몇 장면들이 세련되고 고급스럽고 깊은 감동을 주는 영화적 진수를 선사한다.



어떻게 보면 영화제에서 아주 좋아할 영화일 것이다. 감독도 일반인 관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제 또는 영화에 푹 빠져 사는 관객층에게 높은 질감의 감흥을 주려고 만들었을 것이다. 소설 분야로 치자면 순수소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자극적인 장면은 매우 드물고 시종일관 심심한 일상 장면들의 나열로 볼 수 있지만, 이상하게 지루하지 않고 몰입이 되었다.



아마도, 현재는 보통 상업영화에서 어쩌다가 드물게 사용되는 패닝(panning) 카메라 이동을 아주 많이 요긴하게 사용하는데 그게 이 영화를 제대로 특징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해주고 있다. 패닝을 통한 롱테이크를 아주 많이 사용했고 그 속에 인물들의 일상들을 무덤덤하게 관찰시켜주듯이 표현했다. 상업영화에 식상한 관객, 평소 롱테이크를 사용하는 예술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즐기는 관객, 자극적인 이야기보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아주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상업장르영화, 속도감 있게 편집된 장면을 선호하는 관객에게는 매우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참고 계속 감상하면 중반 이후 그리고 끝에 가서 깊은 우물에서 올라오는 듯한 잔잔한 혹은 찡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의 1970년 초반이 이야기의 배경인데, 생각해보면 한국의 모습과 비슷한 점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한국도 그 당시에 시골에서 상경한 시골처녀가 서울 또는 대도시의 중상류층 저택에서 식모(또는 가정부 최근 말로 '입주 가사 도우미', 요즘 시대에는 거의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인데 과거에는 이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매우 젊은 여자들도 많았다)로 취직해서 숙식하면서 지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이런 여주인공의 비극 또는 희극적인 낯선 도시생활기를 내용으로 하는 국내 영화도 당시에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과 차이가 있다면, 멕시코의 시골에서 올라온 처녀는 거의 원주민의 후손이라서 멕시코의 중상류층의 누가봐도 백인과 확연히 겉모습이 구분된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후천적인 영향으로 소위 외모의 때깔만 다를 뿐 시골 출신이나 대도시 출신이나 같은 한반도 민족이다. 그렇다고 멕시코의 인종갈등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록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감독은 요즘 관객들의 고급스런 취향을 수용해서 또는 기존과 다른 차별적인 방법을 선택해서, 자극적이지 않고 순수하고 착하고 소박한 인성의 여주인공과 그녀가 일하는 어떤 중상류층 가족의 몇 달 동안의 일상을 무덤덤하게 보여준다. 어떤 장면에서는 분명히 CG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부분을 집어내기 힘들 정도로 영상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끝부분 해변 장면에서 그렇다.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이 시종일관 이어지다가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나오는데, 관객의 마음을 잔잔하면서 뭉클하게 만든다. 특히 영화의 끝부분 해변에서의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은 느낌을 받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림의 메아리도 느낄 수 있었다.



2019년 1월 27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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