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1927 포스터



오래 전에 한 번 봐야겠다고 작심하고 시도했었는데 여지없이 무너졌던 기억이 있다. 불과 30분을 채 넘기지도 못 하고 졸음에 굴복하고 말았지 아마. 최근에 다시 봤을 때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중도에 완전히 포기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졸릴 때는 자리를 떠나서 한숨 돌리는 방법으로 따분함을 극복하면서 어느덧 끝까지 감상했다.

영화 역사를 다루는 매체에서 필히 회자될 만큼의 명성을 갖춘 면모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어떤 특별한 감명을 받을 수 없었던 이야기와 캐릭터는 단순히 90년 전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시원스런 변명으로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SF 영화만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그 시대 사람들이 상상하는 미래의 세상을 보여주는 인테리어 소품 미술이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그나마 괜찮은 것은 익히 알려진 대로 여성을 본뜬 인간형 로봇 '마리아'의 디자인 정도이다. 더불어, 전설적인 록그룹 '퀸(Queen)'의 ‘라디오 가가(Radio Ga Ga)‘ 뮤직비디오에서 차용되기도 했던 고층 빌딩의 마천루 장면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그 외에 건물의 실내 기타 미장센은 특별한 매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것은 아마도 이 작품의 단점이라기보다 9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차 발전된 수준의 수많은 SF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식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또는 이 영화가 상영된 시대에는 빛과 어둠의 표현주의 형식미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기에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을 세세하고 정교한 배경과 인테리어에 신경 쓰는 것을 제작비 과소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1920년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첨단 기계의 기본 도형은 (현시대에는 직사각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반하여) 원의 형태라고 생각한 듯이 영화에 형상화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자면, 영상미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표현주의라서 그런가, 만약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감상한 후, 알 듯 모를 듯한 내용을 영화 관련 책이나 문서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로 친절한 이야기 전개는 아니다. 비록 서구문화를 지탱하는 성경과 신화에서 차용한 익숙하고 간단한 인물 구성과 줄거리지만 무성영화에서 간간히 보여주는 자막만으로 다뤄지기에는 결코 단순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꼭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가 최초로 상영된 당시에는 그다지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분석적으로 따져가면서 연구하듯이 관람하는 관객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이 일반적인 재미를 느끼지는 못 하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단점만을 뽑아낸  것 같은데 장점이 더 많은 영화이기에 고전의 목록에 들어앉아 있을 것이다. 왜 그런지 까지는 잘 모르지만 이후에 수많은 SF 영화들이 이 영화에서 어떤 영감을 얻고 어떤 부분을 차용한다는 점에서 SF 영화의 조상으로 섬김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단순히 재미만을 떠나서 지루함이라는 가파른 언덕 너머에 그 어떤 빛나는 보물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어떤 관객이 그 보물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해서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닐 것이다.  


필자가 이 영화를 졸면서도 끝까지 감상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가끔 옛날 영화를 보고 싶은 충동감상 이외에) 흔하다고 볼 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최근에 노르웨이 화가 뭉크(Edvard Munch)의 그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책을 매우 흥미진진하고 유익하게 읽었는데 뭉크가 평생 발전시켰던 화법이 표현주의이고 그것이 그 시절과 이후에 수많은 영화에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소위 뭉크의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화면 구성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표현주의 성격의 영화에서 어떤 장면을 왜 저렇게 어둡고 침침하게 표현했는지, 사람들의 표정은 왜 저렇게 심각하게 표현했는지,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는 것은 뭉크 같은 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들에서 영향을 받아서 영화의 장면을 만들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방금 떠오른 한 가지 예가 있는데, 언젠가 어떤 영화평론가의 강의에서 또는 어떤 영화 관련 서적에서 최근 영화에서 인물이 어떤 심각한 고민을 하거나 고뇌에 빠졌을 때 흔히 사용되는 것으로 인물이 연기 나는 담배를 연거푸 피거나 손가락에 끼고 있으면서 생각에 빠져있는 행동을 하게 하는데 이런 장면을 가장 먼저 시작했던 영화가 1930년대에 유행한 미국의 느와르 장르의 어떤 영화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미술에서는 이보다 훨씬 앞선다. 바로 뭉크가 1895년에 그린 ‘담배를 든 자화상’이다. 이 그림을 보면 여지없이 어떤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를 언젠가 고화질로 구하게 된다면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아마도 십중팔구 좀 더 안정적으로 깊은 곳까지 탐구하며 (졸음에 굴복하지 않고) 감상하게 될 것을 기대해본다. 


2016년 5월 28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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