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하면 옛날에 고등학교 시절 동내 교회에서 올나이트를 했었던 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원래 그 교회에 오래동안 다녔고 나를 인도했던 친구는 몇 번 겪은 일이라 연례 행사처럼 여유롭게 보냈지만 나한테는 처음이라 낯설고 두근거렸고 설래였었다. 단체 미팅까지는 아니지만 남녀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짝을 짓고 게임도 하고 선물교환도 했다. 물론 퀴즈게임을 할 때는 성경내용이 많아서 신앙이 깊은 애들이 인기를 끄는데 유리했고 나에겐 불리했다.


그때는 보통 학생의 입장에서 크리스마스에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서 파티를 한다는 것이 비용대비 교회가 가장 만만했던 것 같다. 밤늦게 공식적인 파티가 끝나고 집에 안 가고 교회에 남아 이렇게 저렇게 끼리끼리 모여서 놀기도 했다. 내가 잘 어울려서 논 것은 아닌데 그냥 그때의 분위기 자체가 순수하고 아련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십중팔구 그때 그런 것에 익숙하듯이 잘 놀았던 사람은 지금 나처럼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약간 다른 일상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일상은 오래도록 떠오르는 추억으로 남지 않는 게 뇌의 성질이다. 내 경우에는 분명히 분위기는 좋았고 빠져들어서 놀고 싶었는데 성격, 취향이 그러지 못해서 약간의 아쉬움도 섞였는지 아련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교회에 군대 가기 전까지 횟수로 총 몇 년을 다녔었는데 다른 크리스마스 이브 올나이트는 기억나지 않는데 첫번째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을 때가 기억난다. 중학교 2년 여학생과 짝이 됐었는데 되게 쑥스러웠고 선물 교환 시간에 그 여학생은 다이어리 같은 것을 줬는데 나는 준비하지 못 했다. 그때는 되게 수줍어하고 순수한 영혼의 여중생이었는데 몇 년 후에 그러니까 내가 청년부(일종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들의 모임)에 다니면서는 교회에 거의 나가지 않다가 연락이 와서 어쩌다 나갔을 때 우연히 교회에서 본 적이 있는데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말 껄렁껄렁한 문제아 같은 스타일로 변해있었다. 욕도 쉽게 하고 성질도 들쑥날쑥하게 부렸다. 부모님들이 교회에 직책이 있고 오래동안 다니고 있어서 교회를 안 나올 수도 없었던 것 같다. 순수했던 여중생이 여고생이 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뀐 셈이다. (부연설명하자면, 내가 직접 그 여고생과 대면하며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다. 나한테 욕을 하거나 성질을 부렸던 것은 아니다. 교회가 작은 편이여서 교인들이 서로에 관심이 많았고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였는데 그 여고생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는 화제거리가 있었고, 내가 지나치다 얼핏 봤을 때도 외양 스타일과 성격이 많이 바뀌어 보였었다. 즉, 나와 짝이었던 그 올나이트와 나중에 여고생의 성격이 바뀐 것은 전혀 무관한 일이라는 얘기다.)


그 여학생의 젊은 인생살이에 무슨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주 오래전이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회에서 올나이트 파티를 처음으로 겪었었 순수했던 여중생과 짝이었는데 나는 선물을 준비하지 못 했고 그 여중생이 나중에 여고생이 되었을 때는 전혀 딴 사람이었다는 이것이 어렴풋이 기억에 오래동안 남아있다.     

  

......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그 시절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고 교회도 같이 다녔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일요일에 교회가 끝나면 그 친구 집에 가서 잠깐이나마 놀았던 기억이 난다. 총 여섯명 정도가 모였었던 것 같다. 일종의 일요일의 아지트였다. 그 친구 방에는 전축(LP Player)이 있었고 이문세, 들국화, 변진섭, 김현식... 등등의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그렇게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용돈을 모아서 LP를 사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 당시에 종로의 세운상가에서 파는 해적판 해외밴드 헤비메탈 LP도 많았다. (국내에서는 판매가 금지되었던 Iron Maiden 같은 헤비메탈 밴드 LP를 불법으로 복제해서 팔았는데 커버가 원래는 칼라였는데 해적판은 단색, 예를 들면 전부 청색이라는 점이 해석판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해줬다) 내가 나중에 카세트테이프를 모으며 음악을 개인적으로 듣기 전까지 이 친구 집에서 들은 대중음악이 적잖은 영향을 준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지금에 와서 그 당시를 아련하게 추억할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 했겠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당시가 떠오른다.


그 시절이 물질적으로 풍족했던 것은 아닌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만약 가상현실 같은 게임의 성능이 급속히 발전해서 과거 어떤 시대를 현실감있게 재현한다면 내 경우에는 그 시대(나의 20대 초반 이전 시대 모두)를 만끽하고 싶다.


요즘 가끔 옛날 국내영화를 보는데 내용도 대사발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느끼하지만 배경으로 나오는 그 시대 거리 풍경이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마치 내가 10대 소년이었을 때 거리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다. 깔끔하지 못한 화질도 마치 꿈속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제공하니까 아이러니하다. 청량리역에 유명한 맘모스 백화점이 있던 시대의 풍경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다. 수 년 전에는 영화공부를 하느라 주로 서양의 유명한 감독의 옛날 영화를 보곤 했는데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국내 옛날 영화를 보곤 하는데 그 옛날 거리풍경과 집안의 가구 인테리어 소품 생활용품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영화가 제공하는 매력 중에 하나는 (의도적이지는 않더라도)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여과없이 거의 그대로 담아낸다는 점일 것이다. 감독은 그냥 상업 멜로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세월이 한참 지나고 보면 생활상 기록 다큐멘터리의 기능도 하는 셈이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왠 리드로 모드(retro mode)인지 모르겠다. 작년에는 아기들 얼굴을 스케치북에 많이 그렸었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했고 글이라도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에는 어떤 아기가 꿈에 생생하게 나타나 꽤 긴 장면 동안 함께 있었다. 나의 무의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아기를 마음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의 의식은 모든 아기들을 마음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의식은 그 중에서도 그 아기를 좀더 마음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걸까?



2013년 크리스마스도 예년과 다르지 않게 지나간다는 사실이 낯설지 않다. 문뜩 낯설어져도 괜찮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아직 감수성이 남아있는 사람은 내년 크리스마스는 다소 낯설게해달라고 새해 소망을 빌지도 모르겠다. 

  

  

201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 김곧글(Kim Godgul)  

  

  


저작자 표시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Running Up Bab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