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onauts #1 커버


개인적으로 만화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체'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대개 이야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림체가 좋다고 생각되면 이야기가 썩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괜찮게 감상하는 편이다. 만화책 미디어의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 미디어보다 표현력에서 있어서 제한적인 압박을 좀더 받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야기에 있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안 그런 작품도 있지만 대개 그런 편이다. 만화로 깊이감이 있는 작품을 내놓아도 대개 팔리지 않는 편이라서 (대중들이 선택하지 않아서) 그 만화가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재밌어 하는 스타일로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얘기다.  한편, 여기서 그림체라는 것은 넓은 의미로서 캐릭터나 배경은 당연히 포함되고 카메라 앵글, 컷 구성, 편집,... 만화책에서 그림과 관련된 모든 것이 포함된다. 

  

 

프랑스 만화책을 보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작품들은 그림체가 거의 순수 미술 작품을 보는 듯 하다. 아름답거나, 독창적이거나, 상상력이 풍부하거나, 표현력이 출중하거나. 한국과 문화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빠져들 정도는 아니어서 아쉽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그림체와 채색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만화도 뭔가 부족한 점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카메라 앵글, 컷 구성, 편집 같은 것에서 기인한 무엇이다. 예를 들어, '엔키 빌랄(Enky Bilal)' 작가의 그림은 더할나위없이 훌륭한데, 역동성, 박진감, 긴장감 그런 것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물론 엔키 빌랄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최근에 알게 된 미국 만화가의 그림체가 필자를 감탄시켰기에 이렇게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만화가의 이름은 '션 머피(Sean Gorden Murphy)'이다.  

  

션 머피를 알게 된 것은, 최근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원작 만화 'The Secret Service'에서 이야기를 담당했던 스토리 작가 '마크 밀러(Mark Miller, 이 사람의 작품 세계도 화려하다)'가 최근에 새로 들어간 '크로노너츠(Chrononauts)' 라는 만화책이 연재 초기인데 영화 판권 계약이 성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고,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서 찾아봤고, 이 만화책에서 그림을 담당하고 있던 만화가가 '션 머피' 였는데 보자마자 그의 그림체에 매료되었다. 

 

참고로 미국, 유럽 만화의 경우에는 특히 치밀한 장르 만화인 경우에는 더더욱 이야기를 담당하는 작가와 그림을 담당하는 작가가 공동작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판매경쟁이 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래 그들 문화가 순수 예술이 아닌 상업 작품인 경우에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작업을 거쳐서 완성된 완제품을 만드는 공정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이나 일본처럼 만화가 혼자서 이야기와 그림을 모두 해내는 경우도 있지만 협업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한국과 일본은 전통적으로 혼자서 만화를 다 해결하는 공정이 일반적인데, 일단 성공해서 만화가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전 작업을 혼자 하는 경우는 드물다. 예전에는 문하생들이 협업했고, 현재는 직원 개념으로 작업하는 것 같다. (정확한 것은 아니고 대개 보니까 그러는 것 같다) 물론 이 얘기는 인물과 배경의 그림체가 정교한 경우를 말하고 그냥 쉬운 그림체로 그리는 작가는 유명해져도 혼자서 작업한다. 충분히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만화계를 얘기하는 포스트는 아니므로 이쯤에서 중략.


 

여담이지만, The Secret Service 에서 그림을 담당한 만화가는 원래 경력이 오래된 장인인지만 Watchmen 으로 거의 전설이 되버린  Dave Gibbons 이다. 특유의 그림체가 단번에 그 임을 알아보게 한다. 또한 컷구성을 살펴볼 때 만화 분야에서 롱테이크 같은 것을 인상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Gibbons 의 그림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의 그림체는 작품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난다. 특히 색채 담당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Watchmen 을 채색한 느낌과 Secret Service 를 채색한 느낌이 비슷하고 이런 느낌이 좋았다), 아무튼 그의 그림체에서는 어떤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화는 그냥 만화이지만 Gibbons 의 그림체에는 그 무언가가 더 있다. 마치 사람으로 치자면 그다지 미남형도 탄탄한 몸매도 아닌데 그 어떤 매력의 기운을 풍기는 사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션 머피(Sean Gorden Murphy) 만화가로 돌아와서, 그의 그림체의 특징은 미국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일본 만화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그가 처음은 아니다. 미국의 반즈 앤 노블즈 같은 대형 서점에만 가도 일본만화책은 즐비하게 비치되어있어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은 미국 만화가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일본 스타일을 따라한 것은 아니고 미국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잘 흡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역동적인 카메라 앵글, 박진감 있는 컷 구성, 속도감 있는 진행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이야기를 담당하는 작가의 영향도 없지 않겠지만, 본인이 스토리까지 담당했던 작품(ex. 'Punk Rock Jesus')에서도 동일한 느낌이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장점으로 볼 수 있다.  


 

션 머피의 그림체는 마치 액션 또는 어드벤쳐 영화들을 심도있게 분석적으로 감상하면서 만화책에 흡수해놓은 것 같다. (마치 공포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이 어렸을 때부터 취미가 형과 같이 동네 극장에 가서 공포 영화를 보는 것이었고 그 영향이 그의 소설 창작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림 스타일 자체는 마치 예전에 장르 소설 속에 또는 신문이나 싸구려 잡지에 실리는 픽션의 삽화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잉크 펜질의 맛'이 농후하게 느껴지는 장점도 있다. 요즘은 만화 제작 작업도 거의 디지털화 되어서 깔끔하고 선명하고 고급화된 장점도 있지만 아날로그 적인 펜질의 느낌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션 머피의 그림체에는 그것이 살아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거칠고 섬세하고 힘 있는 펜질의 맛이 느껴지는 그림체가 좋았다. 게다가 만화의 컷 구성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출중해서 최근에 봤던 미국 만화가들의 그림체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Chrononauts 의 한 장면 (클릭하면 커짐)

  

션 머피의 군계일학적인 재능은 이미 영미문화권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듯 하다. 최근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단편 스토리를 담당하고 션 머피가 그림을 그린 'Absolute Zero The Lost Chapter of Interstellar' 라는 단편 만화를 협업하기도 했다. 인터스텔라 영화에서 만(Mann) 박사가 기약없는 동면으로 들어가기 전 홀로 동토의 행성을 탐사하며 지내고 있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짧은 만화지만 션 머피의 그림체의 출중함을 느낄 수 있다.  


Absolute Zero The Lost Chapter of Interstellar 의 한 장면

  

  







2015년 5월 31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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